첫날 워크샵 마치고 둘째날인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러 노고단을 향했다.
성삼재까지 차로 가고 노고단까지 한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뭐, 게으른 소리긴 하지만 힘들게 노고단까지 안오르고 성삼재 휴게소에서 노닥거리다 오려고 했었다.
화엄사 쪽에서 성삼재까지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차로 올라가는데, 마침 아침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던 터라 위로 오를수록 안개비가 짙어지더니 어느새 발밑으로 안개들이 가라앉고 나중에는 온 지리산 자락을 안개인양 구름인양 휘감아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하고 풍성한 산자락, 제법 차갑게 볼을 부딪는 산바람.
모두들 너무 좋다~ 감탄사만 연발하다가 팀실장님한테 불들려서 노고단까지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힘들여서 낑낑대며 올라갔다 내려오면 그래도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마련.
나역시 그랬다. 그렇지만 그건 지리산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의 길은 오르기 쉽게 아주 잘 놓여져 있다. 다음에 다시 와야지 하고 내려온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숙소로부터 비교적 가까웠던 쌍계사나 천은사는 전혀 들르지 못했고 등등 아쉬운 점이 많다.
그나마 국립공원내 한화리조트에 묵었기에 바로 옆 화엄사까지 시간 쪼개서 다녀올 수 있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밤에 별구경을 하나도 못했다는 점이다.
별과 유성이 엄청났다고 하던데.. 아까워라.. 왜 잠만 잤을까..
아.. 암튼 이 아쉬움 때문에라도 혹은 시야를 휘어잡고 누워있는 산마루를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발걸음을 하여야 겠다.
P.S 지리산이 그렇게 큰 줄 미처 몰랐다. 상식적으로 삼도를 아우르고 있으니 넓게 퍼져 있어 무척 클것이란 것은 알았지만, 정작 보고나서야 그 크기를 대체 어떻게 설명하나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렇담 그 크기 때문에 지리산에 감동을 받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콜로라도 록키산 국립공원도 가보았지만 지리산에 비교할 바가 안된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확실히 지리산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 (천왕봉도 아니고 노고단 다녀오고 나서 이렇게 말이 많으니..크크..)
암튼, 설명할 바 없어서 또다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뒤적뒤적 넘겨봤더니 좋은 구절이 있어 여기 적어놓는다. 마지막 안목을 언급한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 p.71
지리산의 장엄은 천왕봉의 높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넓이와 깊이에서 나온다. 그 면적이 자그마치 485km^2로 전북의 남원, 전남의 구례, 경남의 함양,산청,하동 등 3도 5군이 머리를 맞댄 곳이다. 지리한 연봉이 이루어낸 계곡의 깊이를 우리는 가늠치도 못한다. 그 크기를 말하는 것도 대안목은 달랐다. 남명 선생(주1)은 '덕산계정 기둥에 새긴 글(題德山溪亭柱)'에서 이렇게 읊었다.
천석이나 되는 저 큰 종을 좀 보소(주2)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울리지 않는다오
허나 그것이 지리산만하겠소
(지리산은) 하늘이 울어도 울리지 않는다오
산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을 좋아하는 분은 채색 장식화보다도 수묵 담채화를 좋아할 것이다. 그런 분이라면 예쁜 분원사기보다도 금사리가마의 둥근 달항아리를 좋아할 것이다. 그런 분이라면 바그너나 모짜르트보다도 바흐를 좋아할 것이다. 그런 분이라면 똘스또이의 소설을 책상에 앉아 줄을 치며 읽을 것이다. 하나의 안목은 다른 안목에도 통한다.
산은 지리산이다.
*주1: 남명선생은 조선중기 학자 조식을 말하고 유홍준이 존경해 마지않는다고 써놓았다.
주2: 한자원문을 간신히 띄엄띄엄 읽었는데, 아래 한글로 씌어진 몇 글자는 윈도우기본한자에 들어있지 않아서 한자로 바꿀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請看千石鐘 非大구無聲
爭이頭流山 天鳴猶不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