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은 회사가려고 방문을 나섰을 때와 퇴근 후 돌아왔을 때 한번도 같은 모습으로 있어 본 적이 없다.
밤에 책 읽다가 어지럽게 놓아두거나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어도 퇴근해서 돌아왔을 때 위치는 어김없이 책꽂이다. 이불이며 베개는 말할 것도 없고 깜박 잊고 세탁함에 신은 양말 넣어두는 걸 잊어도 침대는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양말은 세탁함에 가 있다.
침대도, 방바닥도, 옷장도, 서랍 안도, 책상 밑 공간도, 침대 밑 공간도 모두 다 내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제는 지쳐 버려서 더이상 이런 일로 엄마나 아빠와 다투지 않는다.
말해보았댔자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나 뻔하다. 결국 네가 정리를 안하니까 그렇다는 구박 뿐인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안해서임을, 그냥 나의 방식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내버려 두면 알아서 한다는 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새 수건이 어디에 있는지, 새 비누는 또 어디에 있는지, 새 티슈는 어디에 있고, 심지어 화장솜 위치까지 물어야 한다. 필요한 것을 찾으려면 꼭 물어야 하고 안보이면 나 몰래 또 어디에다 치웠는지 화가 나고..
얼마나 답답한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좋아서가 아니라 포기해서 임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상태'를 갖고 싶다.
내가 정리해 둔 상태가 언제까지고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속옷 입는 것에 코멘트를 안하셨으면 좋겠다.
아빠가 책상위에 엉성하게 놓아둔 책을 접어서 책꽂이에 꽂아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새 수건을 세개나 꺼내서 써도 아무말 안했으면 좋겠다.
밥먹을 때 이 반찬 저 반찬 다꺼내서 먹게 한 뒤 꼭 나중에 많이 먹는다고 뭐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침 안먹는 거 가지고 잔소리를 그만 하셨으면 좋겠다.
밤 11시에 커피 마시겠다고 하면 그냥 마시도록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늦잠 자면 컴퓨터 탓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까르푸나 마그넷 가서 이거저거 카트에 집어 넣으면 그냥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집에 와서 화장 안지우고 있어도 제발 아무말 안하셨음 좋겠다.
신용카드 영수액이 평소보다 더 나와도, 전화비가 많이 나와도 그냥 모른체 하셨으면 좋겠다.
어쩌다 과속에 걸려도 모른 척, 잘 때 티셔츠 그냥 입고 자도 모른 척..
어쩌다 비싼 옷을 사와도, 새 신발을 사도, 가끔 인터넷 쇼핑으로 물건이 배달되어도 포장을 뜯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것이 내가 독립하고 싶은 남이 들으면 웃을 '한심한' 이유들이다.
* 그리고 이 글 내용은 엄마 아빠가 영영 모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