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첫 발을 들여놓은 나를 맞이한 것은 어이없는 지갑 도난 사건이었다. 이번 출장 일정이 어디서 어떻게 꼬여버렸는지 뉴욕 입성은 고난과 함께 시작되었다.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던 몇몇 사람이 배신(?)을 하는 바람에 렌트한 6인승 차를 버리고 보스톤에서 뉴욕까지 기차를 타고 와야 했다. 다행히 기차 여행은 좋았다. 뉴욕 펜 스테이션에 도착도 잘 했고 이젠 숙소까지 이동하기만 하면 되는 참이었다. 숙소에 어떻게 가면 되는지 전화하려고 공중전화 박스를 찾아 전화하고 나서 지하철 맵을 뒤적이는 사이 어리버리한 날 노리고 있던 눈이 있었나 보다. 지하철 패스를 사기 위해 지잡을 찾는 순간 이 놈의 지갑이 보이질 않는 것이다. 분명히 공중전화 부스에서 동전을 꺼내기 위해 지갑을 손에 들고 있었던 기억까지는 선명한데 말이다. 그 잠깐 사이 지갑을 가방에 도로 넣었었는지 아니면 부스에 놓았는지 그것도 아니면 손에 들고 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전화했다와 지하철 맵을 뒤적였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도 그리고 함께 있었던 두 사람의 동료도 기억을 못하는 것이었다. 이런 날벼락이 어디있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지갑을 도둑 맞아 본 적이 없는 내가 그리고 이태리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동료들 이야기를 들으며 어리버리하기는 하면서 비웃던 내가 이런 일을 당하다니.. 관광책자에 뉴욕에서 지갑을 조심하란 문구가 선명히 쓰여져 있었건만 주의력이 떨어져 버린 산만한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었었던 것이다.

암튼 지갑을 찾긴 해야 하니까, 거기엔 현금과 신용카드 그리고 여권을 제외한 한국 신분증 등 모든 게 다 들어있었으니까 폴리스 오피스를 찾았다. 웃긴 사실은 경찰서가 바로 내가 지갑을 분실한 공중전화 부스 옆에 붙어 있었다는 거다. 암튼 날 맞은 건 덩치가 아주 커다란 흑인 경찰이었는데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내 말에도 별로 이상한 기색도 없이 형식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나? 언제 잃어버렸나? 찾아는 보았나 등등.. 다 대답을 하니 공중전화 부스를 다시 가보자며 어슬렁 거리는 것이었다. 물론 지갑이 거기 있을리가 없다. 그래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리포트 작성이 시작되었다. 이름, 나이, 사는 곳, 국저, 뉴욕에 머무는 곳, 전화번호, 잃어버린 물건과 내용, 신용카드 갯수가 현찰의 양, 잃어버린 신분증, 키, 몸무게 등등. 이 동네 소매치기가 너무 많은 거 아니냐 했더니 웃기만 한다. 친구들이 뉴욕에서 be careful 하라고 말 안해주더냐면서 말이다. 지갑을 다시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모르겠다고 한다. 이쯤에선 나도 지갑을 도로 찾는다는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다음 차례는 잃어버린 신용카드를 신고 하는 것이었다. VISA 카드 2개와 Master 카드 1개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했더니 두 회사의 global info center 전화번호를 적어 주며 전화기를 내민다. 카드를 누가 사용할지도 모르니 전화해서 신고하고 blocking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했다. 잘 안되는 영어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어 나중에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경찰이 내민 전화를 거절하기가 창피하여 글로벌 센터로 전화를 했다. 다행히 전화상으로 무척 잘 들렸고 내 말도 상대가 잘 알아듣는지 무사히 신고를 끝냈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많아서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잘 끝냈다. 카드사에서는 현찰이나 이머전시 카드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으나 함께 온 동료들이 있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더니 다행이라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 혼자 였으면 대체 어쩔뻔 했냔 말야..) 그리고 다행이었던 것 한가지 더.. 여권과 비행기표는 안 잃어버렸다는 것. 분실을 대비해 여권 사본을 만들어 가기는 했지만 미국 비자는 카피를 하지 않았었는데 이것 마저 잃어버렸으면 나는 제 때 미국을 떠나오기나 했을까..

암튼 함께 간 동료들의 도움으로 남은 일정은 잘 보냈고 뉴욕관광도 할 수 있었다. 운이 나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운이 좋았던 것이다. ^^

'신변잡기 > 여행 & 해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긴장  (1) 2005.09.28
여유, 금산사에서  (0) 2004.11.21
무척 느리긴 하지만..  (0) 2004.11.02
공항 KTF 라운지에서..  (0) 2004.10.31
북경 대신 뉴욕이다.  (5) 2004.10.15
Posted by 세렌디피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