涉世淺,點染亦淺.歷事深,機械亦深.
    섭세천,점염역천.역사심,기계역심.
    故君子 與其達練,不若朴魯.與其曲謹,不若疎狂.
    고군자 여기달련,불약박로.여기곡근,불약소광.
   
    세상 일에 경험이 깊지 않을 수록 그 만큼 때묻지 않을 것이고,
    세상 일에 경험이 깊을 수록  남을 속이는 재주 또한 깊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능란하기보다는 차라리 소박한 것이 낫고,
    치밀하기보다는 오히려 소탈한 편이 낫다.
    - 홍자성의 <채근담(菜根譚)> 중에서


하지만 하지만.. 대부분의 일에서 능란함과 치밀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포레스트 검프가 한없이 부럽곤 한다.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에 본 몬스터..  (2) 2002.08.12
두리번 거리지 않고  (0) 2002.07.08
하이젠베르크  (2) 2002.06.09
정신이 결정하는 것  (0) 2002.05.23
경제학적 사고방식  (0) 2002.05.21
Posted by 세렌디피티
,
하이젠베르크
A.헤르만 지음, 이필렬 옮김/미래사/초판 1991년(초판1쇄 1991년)
나는 조금도 자지 않았다. 하루의 삼분의 일은 양자역학을 계산했고, 삼분의 일은 바위를 탔고, 삼분의 일은 서동(西東) 시집(괴테의 Westostlicher Divan)의 시를 외웠다.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이젠베르크의 전기문을 읽는 것은 드라마틱한 교향곡을 듣는 것과 같다. 평화롭고 조용하며 느린 악장은 하이젠베르크의 유년시절과 같다. 그는 피아노를 배우고 수학을 공부한다. 빠른 템포의 흥겨운 악장은 새로운 물리학에 몰두하는 그와 같다. 좀머펠트 교수는 그의 재능에 걸맞는 과제를 내어 주고 그는 계산을 거듭한다. 파울리와의 토론은 멍청이란 소리만 숱하게 듣지만 언제나 도움이 된다. 불안하고 격정적인 악장은 그가 겪은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는 독일에 남고 많은 학자들은 독일을 떠나 망명한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는 듯 하지만 그것은 그의 유년시절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는 양자물리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계속할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악장은 경건함 속에 끝을 맺는다.
    여담이긴 하지만 사진을 통해서 본 숱한 과학자들 중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보다 잘생긴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젊은 시절 하이젠베르크의 반짝이는 눈과 부드럽게 웃는 모습은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콩닥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이 책 표지엔 60이 넘은 하이젠베르크가 연필을 입에 대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해설에는 '물질의 통일 이론'에 대한 연구라고 되어 있음)이 담겨져 있어 철학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사진을 처음 대한 10여년전의 나나 지금의 나나 하이젠베르크가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학자 1위에 올라 있는 까닭은, 웃고 있는 스무살의 하이젠베르크와 사색에 잠긴 철학적 과학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한데 뒤엉켜 있기 때문일 것이다. ^^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인 <하이젠베르크>는 하이젠베르크의 저서 '부분과 전체', '경계를 넘어서' 뿐만 아니라 토마스 쿤과의 인터뷰와 그리고 기타 여러 자료들을 바탕으로 씌어진 전기문이다. 앞서 음악에 비유했듯이 책은 그의 생애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대학시절의 하이젠베르크이다. 현대물리학 교재를 펼쳐 보면 대부분 1920년대의 물리학에서 시작한다. 좀머펠트, 보어, 플랑크, 보른, 파울리, 아인슈타인. 또한 하이젠베르크와 그들 각각과의 만남과 뒷이야기들은 유머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여기에선 전쟁 중의 하이젠베르크를 인용한 후 글을 마치려고 한다. 자살해버린 오펜하이머보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지만 원자폭탄을 만들 가능성을 지닌 과학자로써의 고민이 드러나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히틀러의 손에 원자탄을 쥐어준다는 생각을 소름끼치는 것"으로 여겼다. 1933년 당시에 어려운 막다른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조언을 얻기 위해 라이프치히에서 베를린으로 막스 플랑크를 찾아갔던 것과 같이, 지금 그는 다시 그의 마음을 짓누르는 문제에 관해서 그와 가까운 사람과 의논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지도적인 원자 물리학자 중의 하나인 보어에게 우리(폰 바이츠제커, 옌젠, 그리고 하이젠베르크)는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옌젠도 닐스 보어의 좋은 친구였는데 그도 우리가 보어와 인간적으로 의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독일에서 간단하게 그 일 전체에서 벗어나고, 그 다음에 누가 하든 그 일은 계속되겠지만 우리는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일 전체를 우리 수중에 두려고 노력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든지, 아니면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하이젠베르크는 1941년 9월에 "물리학자에게 전쟁중의 원자 문제에 관해서 연구할 도덕적 권리가 있는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코펜하겐으로 보어를 찾아갔다. 한스 옌젠이 표현했듯이 '독일 이론물리학의 대주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면죄를 받기 위해서 '교황' 닐스 보어에게 갔던 것이다.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그러나 그릇 생각하게 만든다. 하이젠베르크는 면죄가 아니라 국제적 협력을 구했던 것이다.
    1941년 9월에 상호 이해를 위한 조짐은 좋지 않았다. 독일군이 1940년 5월에 덴마크를 점령한 이래 덴마크 국민은 연합군에 대해 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협력', 즉 독일인과의 협력은 범죄로 여겨졌으며 보어는 하이젠베르크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기도 전에 벌써 내부에서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에게도 내부의 벽이 있었다. 그는 독일인으로서 극히 은밀한 군사 계획에 참여하고 있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반역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나는 의논의 진행을, 내가 그것을 통해서 직접 생명의 위험에 처하게 되지 않는 방식으로 하려고 애썼다. 그것은 아마, 물리학자들이 전시에 우라늄 문제에 몰두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나의 물음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의 약간 초조한 반응에서 나타났듯이 보어는 물음의 의미를 즉시 이해했다. 내 기억에 의하면 그는 '당신(여기에서 보어는 전과 달리 Du가 아니라 Sie를 사용하고 있다-역주)은 정말 우라늄 분열이 무기 제조에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으로 대답했다. 나는 아마 '그것이 근본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기술적 투자를 필요로 하며, 우리는 그것이 이 전쟁에서 실현되지 않을 것을 희망할 수 있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보어는 나의 대답에 놀랐으며, 분명히 내가 그에게 독일이 원자탄 생산 과정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룩했음을 알리려 한다고 믿었다."
    오늘날 그 대화를 가능한 한 다시 재구성해 보면, 무엇보다고 다음 두 가지 점이 하이젠베르크에 의해서 화제에 올랐음이 드러난다. 첫째로 그는 보어에게서 물리학자들이 그들의 과학을 전쟁에 봉사하는 데 제공해도 되는지 듣고 싶었다. "보어에게 물은 것은 아마 나의 잘못이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보어가 처한 상황에서 생각할 때, 보어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는가? 적국의 몇몇 친한 물리학자들에게 이제 조언을 한다는 것은 그의 마음을 아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보어가 독일의 핵물리학자들에게 "거부하고 원자탄을 만들지 말라!"고 조언했다면, 이로써 그는 미국에 있는 그의 친구들에게도 같은 뜻에서 영향을 미쳐야 할 의무를 지는 셈이었다. 보어는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연합군의 전쟁수행 노력에 장애가 되고 싶지 않았다. 히틀러의 진격을 끝내 저지하는 것이 보어게게도 첫째 목표였던 것이다.
    보어와의 의논에서 하이젠베르크에게 중요했던 두 번째 점은, 원자탄 제조에서는 "엄청난 기술적 투자가 필요하며, 따라서 이 실제의 상황이 물리학자들에게 어느 정도는 원자탄의 제조가 시도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결정할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도 보어에게는-그가 독일과 미국의 핵물리학자들 사이의 정직한 중개인 역을 맡고자 했다면-연합국에 있는 그의 친구들과 제자들에게 원자탄 개발을 위한 연구를 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는 결과가 되는 셈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나중에 미국의 계획을 멈추는 것이 보어에게는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보어는 "놀랍게도 모든 나라에서 물리학자들의 전쟁 참여가 불가피하고 따라서 정당하다고 말했다. 보어는 분명히, 여기서 모든 민족의 물리학자들이 말하자면 그들의 정부에 대항해서 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다음에) 나에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았고, 따라서 나의 질문을 우리 지식의 상태에 관한 간접적인 정보 이상으로 파악했다는 말도 했다."
    이 대화에서 하이젠베르크는 매우 불운했다. 전에 그는 코펜하겐 그룹의 많은 뛰어난 물리학자들 중에서 보어와 가장 가까웠다. 20년대에 두 사람이 '코펜하게 해석'까지 포함해서 현대 물리학을 공동으로 창조했을 때 그는 보어의 수제자였다. 그리고 그 이후 그들은 가까운 서로 신뢰하는 친구였다. 전에는 섬세한 물리학적 철학적 사고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아주 빠르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의사 소통은 분명히 불가능해진 것이다.
    절친한 친구이자 뛰어난 학자인 두 사람 사이의 실패로 끝난 대화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이해되었다. 즉 민족 사회주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많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전에는 그토록 가깝던, 서로 공모했던 국제 물리학자 집단이 파괴되었다고. 물리학자들은 이제는 함께 일하지 않고 서로 대항해서 일했다. 하이젠베르크는 독일 우라늄 계획의 우두머리였으며, 보어는 덴마크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친 뒤에 미국의 원자 에너지 계획을 위해서 일했던 과학자들에게 조언을 했다.
(2002.06.09)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리번 거리지 않고  (0) 2002.07.08
경험이 적을수록 깨끗하다  (2) 2002.06.26
정신이 결정하는 것  (0) 2002.05.23
경제학적 사고방식  (0) 2002.05.21
허영과 독서  (0) 2002.05.18
Posted by 세렌디피티
,
정신이 생각하는 것을 신체가 결정할 수 없고, 신체가 움직이거나 쉬거나 또는 다른 어떤 일(그러한 것이 있다면)을 하는 것을 정신이 결정할 수도 없다.
- 스피노자, <윤리학> 3부 명제 2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일, 눈을 깜박이는 일, 소화를 시키는 일과 같은 류의 신체가 하는 일은 사고회로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나는 위에서 인용한 스피노자의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의 정신은 나의 몸에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나의 몸은 나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 둘은 서로 먼산 보듯 무관심한 척 하지만 또는 모르는 새 일을 저지르고 말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서로 협력하는 것 같다.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험이 적을수록 깨끗하다  (2) 2002.06.26
하이젠베르크  (2) 2002.06.09
경제학적 사고방식  (0) 2002.05.21
허영과 독서  (0) 2002.05.18
컴퓨터를 만든 15인의 과학자  (0) 2002.05.04
Posted by 세렌디피티
,

잠들기 전 잠깐씩 넘겨보고 있는 책이다.
경제학적 사고방식.
딱딱한 제목과는 다르게 내용은 쉬운 말로 알기 쉽게 쓰여져 있다. 몇몇 부분은 게임이론하고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최근에는 무임승차자(Free-Rider)문제와 죄수들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라는 소제목의 글을 읽었다. 이 두가지는 개인과 공공, 시장과 정부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과 일련의 관계가 있다. 또는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조금 더 풀어쓰자면, '개인 각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일일지라도 개인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무임승차자는 말 그대로 댓가를 치루지 않고 차에 올라타는 사람, 즉 혜택을 입으면서도 이를 공급하는데 소요되는 비용 중 자신의 몫을 치르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사회 일부 문제는 이런 무임승차자가 꼭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 즉 누군가가 "만약 우리 모두가 .... 하면, 에너지 문제를 이겨낼 수 있다.", "우리 각자가 ...한다면, 고속도로의 쓰레기가 사라질 것이다." 라고 주장의 실효성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죄수들의 딜레마는 만약 "우리 각자가 2시간 봉사해서 더 나은 정부를 만들 수 있다."는 가정하에 시작된다. 모두가 2시간을 봉사해야만 좋은 정부가 실천된다라고 하는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2시간을 봉사해야 한다라고도 말할 수 있고, 이것은 나만 빼고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2시간 봉사하기만 해도 좋은 정부는 실현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즉, 나 자신은 그 두시간에 볼링 게임이나 하면서 놀면서 보내도 좋은 정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딜레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생각으로 모두 볼링을 친다면, 나 혼자 두 시간 봉사해서 좋은 정부를 만들 수 없다. 즉 나는 어차피 좋은 정부도 갖지 못하는데 2시간을 봉사까지 해야 한다. 그러나 볼링하면서 노는 사람들은 좋은 정부는 갖지 못하지만 적어도 볼링 게임을 즐길 수는 있다. 따라서 나는 무조건 볼링을 하는 경우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무임승차자와 죄수들의 딜레마에 의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편이 항상 더 이득이다.
이것이 경제학적 사고방식이라는 건가? 이젠 이론도 뒷받침되었으니 맘놓고 개인주의적 행동을 하라는?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젠베르크  (2) 2002.06.09
정신이 결정하는 것  (0) 2002.05.23
허영과 독서  (0) 2002.05.18
컴퓨터를 만든 15인의 과학자  (0) 2002.05.04
암중모색(暗中摸索)  (0) 2002.05.03
Posted by 세렌디피티
,

최규선이라는 사람이 검찰에 출두할 때 들고갔다는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두고 이해하지도 못할 책을 들고 들어간 허영덩어리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학력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였지만 이해하지도 못할 책 운운 하는 것은 이상하게 들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책을 꼭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해해야만 하는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고 성인인 사람에게 딱 맞는 수준의 책이란 꼭집어 어떤 책일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그 책을 다 읽어봤나? 등등의 의문 때문이다. 수식으로 꽉 들어찬 과학이나 공학계열의 책도 아니고 상당량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책도 아닌 것 같고, 경영이나 사회, 세계화 문제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식습득 차원에서 그냥 읽어도 될 것 같은 책인데 넘 꼬투리를 잡는다. 뭐.. 잘못을 저질러서 검찰에 출두하는 판국에 여유있는 척 책을 들고 간 것을 가지고 말이 많다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지만..

어쨌거나 결과는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것으로 종결.
허영이 호기심을 부추긴 셈인가? 재미있는 현상이다.

Posted by 세렌디피티
,

컴퓨터를 만든 15인의 과학자
데니스 샤샤 · 캐시 레이지어 공저, 박영숙 옮김/세종연구원/초판 1998년(초판1쇄 1998년)

만일 전체 인구 가운데 어떤 2퍼센트의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컴퓨터에 반향을 일으키기 쉬운 정신적 소양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선천적으로 컴퓨터 과학에 끌리도록 타고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도널드 크누스(Donald Knuth)
난 구조, 그래프, 자료 구조 등을 머리 속에 그려 봅니다. 그건 다른 많은 것들보다고 쉽게 떠오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 로버트 타잔(Robert Tarjan)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스로 생각하고 진화까지 하는 컴퓨터를 떠올리면 짜릿해진다.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Matrix),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뉴로맨서(Neuromancer), 신세기 에반게리온(Neon Genesis Evangelion).. 그 숱한 SF물들을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다. 아마도 언젠가는 실현될 세상임을 믿고 있어서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가능하게 될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는 밝은 미래를 꿈꾼다. 우울한 컴퓨터는 단지 공상과학의 감상적인 부분일 뿐.)

    매끄럽지 않은 번역체와 번역의 오류 때문에 매력이 삭감되긴 했지만, 이 책은 현대의 컴퓨터 발전에 기여한 열 다섯명의 과학자들에 대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식 인터뷰 토대 전기문 형식을 취한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주인공 과학자들 대부분의 이름은 물리학자들의 이름과 다르게 나에겐 아주 생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호기심과 컴퓨팅에 관한 관심 덕분에 끈기를 가질 수 있었음을 이야기하면서 책속으로 들어가 본다.

    저자는 열 다섯명의 과학자들을 다음과 같은 네가지 범주로 구분지어 놓았다.
    -언어학자들 : 어떻게 기계와 대화를 할 것인가?
    -알고리즘 학자들 : 컴퓨터에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설계사들 : 보다 나은 컴퓨터를 제작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의 조각가들 : 자체의 해법을 찾아 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을까?

    또한 이 네가지 화두는 이들 과학자들이 가졌던 호기심과 이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한 사고방식을 설명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제기된 많은 문제들 가운데서 다이크스트라(Dijkstra)가 자신의 학생들에게 낸 시험문제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다이크스트라에게는 동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그 자신이 '내가 고립되어 있다는 행복한 사실'이라고 표현했던 상황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다른 사람들이 지나쳐버리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끄집어 내는 그의 능력은 1965년 다시 한번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해 가을의 어느 날 저녁, 다이크스트라는 자리에 앉아 자신의 아인트호펜 공과대학 학생들을 위해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는 시험 문제 하나를 출제하고 있었다. 다이크스트라는 그것을 만찬의 5조(dining quintuple)문제라고 불렀었지만, 얼마 안 있어 옥스퍼드의 호아(Hoare) 교수가 지어준 만찬의 철학자들 문제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후난 성의 철학자 다섯 명이 탁자에 둘러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들은 각자 밥이 가득 담긴 밥그릇과 그 한쪽 옆에 놓인 젓가락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각 철학자의 오른쪽 젓가락은 그 옆에 앉은 사람의 왼쪽 젓가락이 된다. 그 만찬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각 철학자는 잠시 동안 생각을 하고, 잠시 동안 먹고 난 다음, 잠시 동안 기다린다.
    2. 먹을 때는 반드시 오른쪽 젓가락과 왼쪽 젓가락 모두 집어야 한다.
    3. 철학자들은 젓가락을 집어 들거나 내려 놓는 것만으로 의사 소통을 한다.(말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철학자들은 각자가 먹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알고리즘을 사용한다고 가정하자.
    (1) 오른쪽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을 때 그것을 집어 올린다.(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그것을 들고 있을 경우엔 기다린다)
    (2)왼쪽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을 때 그것을 집어 올린다.(왼쪽에 앉은 사람이 그것을 들고 있을 경우엔 기다린다)
    (3) 먹는다.
    여기서 몇 가지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만일 모든 철학자들이 동시에 먹기 시작하려고 결심한다면 그들은 (1)단계에는 모두 성공하겠지만 (2)단계에서는 영원히 기다려야만 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교착(deadlock)이라고 부른다. 동료 철학자들이 모두 한 개의 젓가락만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서 (2)단계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떤 철학자가 자신의 오른쪽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깐 동안 조용히 앉아 오른쪽 사람이 먹는 것을 지켜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타적인 철학자는 결코 먹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을 기아(starvation)라고 한다. 모든 철학자가 먹는다 하더라도 일부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먹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공평성의 결여(lack of fairness)라 부른다. 즉, 인생을 나타내는 것이다.
    컴퓨터 네트워크에서는 만찬의 철학자들 문제의 다양한 변형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근거리 통신망 내의 컴퓨터들은 흔히 한 번에 단 하나의 메시지만 보낼 수 있는 선이나 방송 채널을 공유한다. 만일 모든 사이트들이 동시에 전송을 시도할 경우 모두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재시도를 하면 또 다시 실패하게 된다. 이것은 교착과 유사하다. 만일 어는 하나의 사이트가 항상 우선권을 가진다면 다른 사이트가 기아 상태에 놓이거나 혹은 프로토콜이 불공평하게 될 것이다.
    철학자들이나 네트워크 양쪽 모두에 적용되는 한 가지 해법은 무작위화(randomization)이다. 어떤 한 철학자나 사이트가 필요로 하는 자원을 확보할 수 없을 경우, 다소 임의적인 과정에 의해 결정되는 일정한 양의 시간 동안 기다리고 나서 재시도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 역시 그 과정이 규칙적인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불운하게만 작용되어 여전히 기아 상태를 만들어 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이크스트라가 만찬의 철학자들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 몇 년이 지난 후 그는 당시 존재하는 가장 복잡한 컴퓨터 시스템 가운데 하나였던 MIT의 멀틱스(Multix) 설계자들이 교착에 대해 전혀 고려해 보지 않았으며 그 시스템이 마치 아주 많은 철학자들이 각자 젓가락을 한 개씩만 들고 있는 경우처럼 이따금씩 갑자기 정지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다이크스트라는 깊이 생각하면서 완곡한 반어법을 사용해 이렇게 말한다.
    MIT측에서 네덜란드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무명의 컴퓨터 과학자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을 비난하기는 어렵겠지요.

(2002.05.04)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학적 사고방식  (0) 2002.05.21
허영과 독서  (0) 2002.05.18
암중모색(暗中摸索)  (0) 2002.05.03
아가책 관련 사이트 - 여기 오는 엄마 아빠를 위한  (1) 2002.04.17
동생이 읽어주는 도덕경  (0) 2002.03.23
Posted by 세렌디피티
,
 암중모색 : 일상의 발칙한 반란(예스24리뷰)
재미있는 제목이다. 리뷰를 읽어봤더니 내용도 그러하다. 읽고 나면 조금 시원해질까? 나 역시 암중모색 중..
Posted by 세렌디피티
,
* 아래 글들은 울 회사 아줌마들 사이에 오갔던 아가책 관련 정보입니다.

최근에 아기들 볼만한 비디오를 살 일이 있어서 아래 정보를 얻었는데 알다시피 나에겐 거의 무용지물인 내용이라서.. 여기 오는 아가 엄마 아빠들 참고하시라.. 암튼 욕심내어 애 키우려면 부모가 넘 힘들겠어.. ㅋㅋ (내용이 반말인것은 쪽지 내용이기 때문인데 양해를..)

No.1
내가 처음 이런 사이틀들을 접하고 애들 CD랑 책이랑 산 곳은 키드샵 이야. 게시판이랑 그런 것은 좀 부실 해 보이지만 책이나 CD, 비디오등이 대부분 많이 싸지. 영어책, 특히 스콜라스틱 오디오북은 빌리 잉글리쉬가 좋아. 킴앤존슨은 너무 비싸고. 영어동화책을 매달 보내주는 북클럽들. 여긴 매월 회비를 내면 한달에 4권씩 보내주는 곳이야. 에브리 클럽 스토리 하우스 DK 책이나 CD는 DK4U가 있고 그림책은 키즈위즈가 많은 책을 가지고 있어. 이쪽 저쪽 다니다보면 많이 알게 될 것 같지만... 일에 지장 있을텐데.... 걱정되네... 참 다음 아줌마네도 한번 가 봐.... 도움이 될거야.
- 애기 똥풀... 그림책은 이곳이 캡이야...
- 워킹맘
- 우당당탕
- 배경숙
그럼 이만...

No.2
아이북랜드 : 일주일에 4권씩 빌려줌.
 유아 영어 및 교육 : "영어하면 기죽는 ~" 책의 저자 히플러가 운용하는 사이트인데 유아 영어 부분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까? 우리 애들한테는 좀 어린 수준이라 난 잘 안가보고 있지만.
육아 포탈 사이트 해오름 : 많은 사람들이 해오름을 애용하는 것 같음. 정말 육아와 관련된 포탈 사이트인 것 같음.
유치 및 초등교육 : 내가 제일 애용하는 곳이지. 8월 중순부터 유료화되서 그냥 훝어보기 힘들겠지만 이 사이트를 통해 오르다, 은물등을 알게됬지. 애들을 키우는 철학(?) 같은 것도....
유아용 쉐어웨어 및 CD 평가
: 아이용 컴퓨터 SW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 곳이지. 많은 것들을 다운 받을 수도 있고... 작년 겨울에 한창 메달려서 거의 다 받았다고 할 수 있어. 원하면 내가 CD로 구워 줄 수도 있을 정도지.....

그럼 한번 둘러보고 자세한 내용은 다시 문의하시기를...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컴퓨터를 만든 15인의 과학자  (0) 2002.05.04
암중모색(暗中摸索)  (0) 2002.05.03
동생이 읽어주는 도덕경  (0) 2002.03.23
이야기 파라독스  (0) 2002.03.20
내가 나의 행위를..  (0) 2002.03.19
Posted by 세렌디피티
,

좋다. 좋은 말을 들으니 좋다.
어렵다. 행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어렵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찌리리 찔려와 마음이 괴롭다. -_-;;

한참 읽어 주던 내 동생..
무위자연을 실천하기 위해 졸리면 잠을 자야 한대나.. 책 덮고 지금 자려고 누웠다.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중모색(暗中摸索)  (0) 2002.05.03
아가책 관련 사이트 - 여기 오는 엄마 아빠를 위한  (1) 2002.04.17
이야기 파라독스  (0) 2002.03.20
내가 나의 행위를..  (0) 2002.03.19
결혼에 대하여  (0) 2002.03.12
Posted by 세렌디피티
,
이야기 파라독스
마틴 가드너 지음, 김용운 감수·이충호 옮김/사계절/초판 1990년(초판1쇄 1990년)
이 책은 논리학과 확률, 수, 기하학, 통계, 시간 등 수학의 여섯 분야에 등장하는 파라독스를 다루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고 수학적으로 중요한 것들만 최우선적으로 선택했다. 이 책에서 '파라독스'라는 말은 넓은 의미로 쓰이는데, 직관이나 상식을 벗어나서 일반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모든 수학적인 결과를 가리킨다. 이러한 파라독스는 크게 세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명백히 거짓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참인 명제, 2.명백히 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거짓인 명제, 3.전혀 오류가 없지만 나중에 논리적 모순에 봉착하는 추론. -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책을 나한테 선물한 내 친구는 책에 이런 메모를 남겼다. '우리는 불확실한 이해 속에 살고 있어. 그저 그러려니 하는 거짓 속에서 우리의 상식을 잃어가고 있지...'라고 말이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거짓, 참인 것 같지만 실은 거짓인 것. 논리적인 것 같지만 실은 논리적 모순에 빠지는 결정 같은 것. 최악의 경우는 거짓이고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귀찮아서 혹은 어쩔수가 없어서 그냥 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역설들은 부지런히 고쳐나가야 함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은 논리학, 기하학, 수, 통계, 확률 그리고 시간의 파라독스 라는 여섯 개 카테코리 안에서 재미있는 파라독스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온지도 벌써 10여년 전. 이미 낡은 파라독스가 되어 있을 법하지만 인용할 만한 가치는 있으므로, 책 속의 80여개의 파라독스 가운데 흥미로웠던 내용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주의 부호>
    명쾌한 교수는 다른 시공간 차원의 어느 은하에 살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어느 날, 명쾌한 교수는 지구에 가서 인류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구에서 기발해 교수를 만났다.
    기발해 교수: 세계 대백과 사전을 가져가는 것이 어떤가? 거기에는 우리 인류의 모든 지식이 담겨져 있네.
    명쾌한 교수: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군. 그렇지만 너무 무것운 것이 유감이군.
    명쾌한 교수: 그렇지만 나는 이 백과의 내용을 부호화해서 이 금속 막대기에 저장시킬 수 있어. 그것을 이 막대기에 하나의 선으로 옮겨 놓는 거야.
    기발해 교수: 하나의 작은 선에 어떻게 그 많은 정보를 옮겨 놓을 수 있는가?
    명쾌한 교수: 그건 아주 기초적인 거야. 각각의 문자나 숫자, 구두점 기호 등에 다른 숫자로 된 부호를 주지. 그리고 0은 두 부호 사이의 간격을 표시하고, 00은 두 단어 사이의 간격을 표시한다.
    기발해 교수: 나는 그래도 모르겠는걸? 어디 한번 chat을 부호로 나타내 봐.
    명쾌한 교수: 그건 아주 간단하지. 내가 설명한 부호로 나타내면 chat은 30801020이 되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휴대용 초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하여 명쾌한은 백과사전의 내용을 입력시켜 한 줄의 거대한 숫자로 부호화 시켰다. 그리고 그 숫자 앞에 0과 점을 찍은 다음 이것을 십진법의 분수로 만들었다. 그 분수가 a/b로 나타났다고 하자. 명쾌한은 그의 막대기 위에 a와 b의 길이를 정확하게 나누는 점을 표시하였다.
    명쾌한 교수: 내가 살고 있는 행성으로 돌아가면, 컴퓨터로 a와 b를 정확하게 계산하여 a/b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의 부호를 해독시키면 컴퓨터는 백과사전의 모든 지식을 인쇄해낼 것이다.


    이 내용이 역설적이 되는 까닭은, 부호화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물리적)으로 막대기에 정확한 금을 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명쾌한 교수는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 그 분수를 부호로 정확히 환원할 수 없다. 하지만 재미있는 발상임에는 틀림없다. 부호를 사용해 막대기에 선하나를 그어 백과사전의 지식을 담을 수 있다니 말이다.
(2002.03.10)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가책 관련 사이트 - 여기 오는 엄마 아빠를 위한  (1) 2002.04.17
동생이 읽어주는 도덕경  (0) 2002.03.23
내가 나의 행위를..  (0) 2002.03.19
결혼에 대하여  (0) 2002.03.12
책 주문  (0) 2002.03.11
Posted by 세렌디피티
,
내가 나의 행위를 면밀히 심사하려고 할 때, 그것에 대한 판결을 내리고 인정하거나 비난하려고 할 때,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경우에 내가 나 자신을 마치 두 사람인 것처럼 나눈다는 것이다. 심사자이며 재판관인 나는 자신의 행위가 심사되고 판결을 받는 사람인 동시에 또 하나의 나와는 다른 인격을 지닌다.
전자는 관객이다. 나는 그의 위치에 나를 놓거나 특정한 관점에서 나를 보면 나의 행동이 자신에게 어떻게 비춰질까를 고려함으로써, 나의 행위에 대한 그의 감정 속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후자는 행위자이다.
나는 적절하게 이 사람을 나 자신이라고 부르며, 관객의 위치에서 그의 행동에 대하여 어떤 견해를 가지려고 노력해 왔다. 전자는 재판관이고, 후자는 판결을 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재판관이 모든 측면에서 판결을 받는 자와 동일하다고 하는 것은 원인이 모든 측면에서 결과와 동일하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 Adam Smith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중에서

사실.. 스스로를 냉정하게 들여다 보기가 무서울 때가 더 많다. 내 행동을 심사하면서 동시에 그 기준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의지와 기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면 완전히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판단하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의지와 기준조차도 모호해질 만큼 사람에겐 나약한 구석이 있다.
가장 버티기 힘든 것은, 자신에게 이상적인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 그 의지를 깨는 것이다.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생이 읽어주는 도덕경  (0) 2002.03.23
이야기 파라독스  (0) 2002.03.20
결혼에 대하여  (0) 2002.03.12
책 주문  (0) 2002.03.11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0) 2002.03.10
Posted by 세렌디피티
,
(...)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결혼에 대하여'라는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여기 오는 내 친구들. 대부분 결혼한 사람들인데 위 싯구에 동의하려나..

이해를 구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것일테고..
그럼에도 때로는 외로운 까닭은 자신을 이해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나는.. 외롭지 않기 위해, 혹은 함께 있기 위해.. 이런 이유들은 대지 않으련다.
차라리 외로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뭐 이런 식의 표현이 오히려 정확하겠지.

세상 양 끝에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면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외로운 까닭은 너무나 너무나 몰라줘서 였을 거다.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야기 파라독스  (0) 2002.03.20
내가 나의 행위를..  (0) 2002.03.19
책 주문  (0) 2002.03.11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0) 2002.03.10
예술?!  (0) 2002.03.09
Posted by 세렌디피티
,
늦잠을 자서 아침을 걸렀더니 배도 고프고, 머리속도 텅 빈 것만 같다.
그래서 그런가.. 어제 교보문고에서 이번 학기 교재 중 한권을 주문하면서, 두권의 책을 더 골라 주문했는데 그게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더듬더듬 기억을 거슬러 가면 생각이 나겠지만 웃기게도 그것도 잘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귀찮음에도 교보에 로긴해서 조회해 보니 <신의 베틀>(클리퍼드 픽오버, 경문사)과 <게임이론>(사울 스탈, 경문사)을 주문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아.. 그랬구나.. 그걸 언제 다 읽으려고 또 욕심을 냈을까나.. 그거 아니어도 읽을 책은 여전히 많은데.. 크크.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나의 행위를..  (0) 2002.03.19
결혼에 대하여  (0) 2002.03.12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0) 2002.03.10
예술?!  (0) 2002.03.09
콩도르세의 파라독스  (1) 2002.03.07
Posted by 세렌디피티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사이언 싱 지음, 박병철 옮김/영림카디널/초판 1998년(초판7쇄 1999년)
그것은 너무 단순한 문제였습니다. 열 살배기인 저도 문제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그 문제를 푼 수학자가 아무도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어떤 운명 같은 걸 느꼈어요. 이 문제를 내가 풀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거였지요. -앤드루 와일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책은 페르마 이후 350년 동안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있었던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1665)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를 마침내 증명해낸 영국의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Andrew Wiles)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또한 수학 이야기 이기도 하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책의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다 떠오르진 않지만 아주 흥미진진하게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던 기억은 뚜렷하다. 이것은 분명 이 책의 저자 사이먼 싱과 역자의 능력 덕택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수학공식에서 이름만 들어본 수학자들을 만났고 그 밖에 많은 수학적 난제들을 접했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었다.

    이 책은 1993년 6월 23일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한 수학강연장으로 부터 시작한다. 이 강의에서 한 젊은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가 300여년 동안 수학자들을 괴롭혔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였다. 그렇담 이쯤에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페르마가 노트에 남긴 그 유명한 말을 들여다 봐야 한다.

    xn + yn = zn : n이 3이상의 정수일 때, 이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해 x,y,z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다. 그러나 이 책의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 옮기지는 않겠다.

    그리고 나서 책은 수학의 역사와 난제 속으로 뛰어든다. 저토록 심플해 보이는 명제의 증명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설명에 따르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현대 수학의 모든 테크닉들을 총동원해야만 증명될 수 있는 수학의 정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앤드루 와일즈의 업적은 전혀 다르게 보였던 수학 분야들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앤드루 와일즈의 증명을 실은 논문은 1995년 3월호 'Annals of Mathematics'에 두 편으로 나뉘어 실렸는데 130여 페이지의 자세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딱딱한 증명 같은 건 나오지 않으니 긴장을 풀고 읽으면 된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여전히 한가지 호기심이 남는다. 와일즈가 증명한 방법에는 20세기에 들어 개발된 새로운 수학 테크닉과 와일즈 자신이 직접 고안해 낸 것도 있으며 300년 전의 페르마가 알았을 리 없는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 갈루아군 같은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페르마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증명했지만 여백이 좁아 옮기지 않겠다고 했는데 과연 그것이 어떤 방법이었을까 하는 호기심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페르마가 잘못 생각했을 거라는 냉정한 대답과, 분명 페르마가 17세기 수학만으로 이루어진 천재적인 증명을 했을 것이라는 두가지 의견이다. 즉 페르마의 증명 안에는 오일러부터 와일즈까지의 모든 수학자들이 놓쳐버린 경이로운 논리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와일즈의 논문 이후에도 많은 수학자들이 페르마의 진짜 증명을 재현시키기 위해 지금도 페르마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
    와일즈는 10살 때 페르마의 정리를 처음 접했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런 중에 수학의 다른 여러 난제들을 풀어 내었고 대통일수학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렇지만 페르마의 정리 증명에 실패한 수학자들의 노력과 끈기는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 자신은 실패했을지 몰라도 뒤에 온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배우고 점점 발전해 가고 마침내 우리는 해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리우스(Phlius)의 왕자 레온(Leon)이 '철학자(Philosopher)'라는 신조어를 만든 피타고라스에게 철학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설명해 달라는 말에 답한 부분을 옮겨본다.

   
레온 왕자여, 인생이란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운동경기와 비슷합니다. 이렇게 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떤 이는 재물을 구하는 일에 몰두하고, 또 어떤 이는 명예와 영광을 얻으려는 야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어떤 이는 재물을 탐하고, 또 어떤 이는 권련과 권세를 향한 맹목적인 정열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가장 현명한 이는 삶 자체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연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헤매고 있습니다. 완전무결한 현자란 있을 수 없겠지만, 이들이 바로 '철학자'입니다. 그들은 지혜를 사랑하고, 자연의 비밀을 탐구하는 열정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2002.03.10)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에 대하여  (0) 2002.03.12
책 주문  (0) 2002.03.11
예술?!  (0) 2002.03.09
콩도르세의 파라독스  (1) 2002.03.07
학문의 즐거움  (0) 2002.02.15
Posted by 세렌디피티
,

과거에는 이상하게만 느껴졌던 것이 지금은 오히려 카타르시스처럼 느껴진다. 내가 변한 것인지 세상이 변한 것인지 좁은 우물 속의 나는 알 수 없지만 다음 글이 이런 상태를 어느 정도 설명 해주는 것 같아 옮겨 놓는다.

러시아의 화가 칸딘스키는 그의 저서《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2) 속에서 '정신의 3각형'이라는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위미술의 선구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의하면 시대의 정신생활이 형성하는 3각형 속의 저변(底邊)에는 광범위한 대중이 있고, 정점(頂點)에는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예술가가 있다. 그런데 이 3각형 전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앞으로, 위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으며, 오늘 고독한 정점에 있는 예술가의 예감에 지나지 않던 것이 내일은 지식인의 관심사가 되고 모레는 대중의 취미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From 야후 백과사전 아방가르드)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새 삼각형 정점에 있던 전위적인(아방가르드적인?) 정신이 점점 움직여 내려와 저변을 형성하고 대중적 취향에 맞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전위성이 현대의 대중성이 되고 이 시점의 삼각형 꼭지점에는 또다른 소수만의 전위적 정신이 시작된다. 그리고 아마도 나는 이 꼭지점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것이 저변이 될 즈음 들여다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칸딘스키가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예술가라고 했을지언정, 혁신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구속받지 않는 정신적 자유의 소유자들로써 즐겁다고 할 수 있겠다. 뭐... 한마디로 부럽단 얘기다. ^^;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주문  (0) 2002.03.11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0) 2002.03.10
콩도르세의 파라독스  (1) 2002.03.07
학문의 즐거움  (0) 2002.02.15
조건있는 사랑  (0) 2002.01.28
Posted by 세렌디피티
,

(아래 글은 마틴 가드너의 <이야기 파라독스> 일부를 발췌, 인용하여 쓴 것임.)

갑, 을, 병, 이 세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마지막 여론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중의 2/3는 을보다 갑을 더 좋아하며, 또 유권자 중의 2/3는 병보다 을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갑은 병보다 당선될 확률이 더 높을까?
이것은 수학자 콩도르세(condorcet, 1743~1794)가 발견한 파라독스, 일명 선거의 파라독스이다.
'A가 B보다 키가 크고, B가 C보다 키가 크면 A가 C보다 키가 크다' 가 참이 되는 관계를 전이성(轉移性)이 있다고 말하고, 그렇지 않은 관계 즉 위의 대통령 선거와 같은 파라독스를 비전이성 관계라고 한댄다.

복잡하고 비논리적인 세상살이는 이러한 비전이적 관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A,B,C 세 남자가 한 여자에게 청혼을 했다. 그런데 그녀는 지성,건강,부 이 세가지 기준으로 남자의 등급을 매긴다. 짐작하다시피 3사람을 세가지 기준으로 1:1로 판단하고자 할 경우 콩도르세 파라독스가 발생할 수 있다. 즉 그녀는 A가 B보다 낫고, B는 C보다 낫지만 C는 A보다 낫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누구도 선택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다가 결국은...

사실 이러한 갈등은 아주 빈번히 나타난다. 예를 들면 내가 얼마전 디지탈 카메라를 살 때도 그랬고, 어쩌다 옷을 살 때도 그렇다. 비전이적 관계 투성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하기 위해서 각 기준에 가중치를 두지 않을 수가 없으며 따라서 자신이 포기해 버린 부분에 대해 다소간의 미련을 떨치기 위해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0) 2002.03.10
예술?!  (0) 2002.03.09
학문의 즐거움  (0) 2002.02.15
조건있는 사랑  (0) 2002.01.28
아인슈타인과의 두뇌게임  (0) 2002.01.26
Posted by 세렌디피티
,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김영사/초판 1992년(1판7쇄 1993년)
왜 사람은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가? 나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지혜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 지혜가 만들어지는 한, 배운 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이 결코 손해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일단 잊어버린 것을 필요에 의해 다시 한 번 꺼내려고 할 때, 전혀 배워 본 적도 없고 들어 본 경험도 없는 사람과는 달리, 최소한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을 들이면 별 고생 없이 그것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혜에는 그런 측면이 있다. - 히로나카 헤이스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이공계의 공부를 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이 책과 저자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까닭은, 그러니까 천재들의 자서전보다 이 책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까닭은 평범함에서 시작하지만 끈기와 노력 후에 얻게 된 눈부신 성취결과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차분히 읽어나가다 보면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 수상 등의 이야기는 그렇게 살다보니 당연히 따라오는 부수적인 부분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사실 그러하다.
    오늘 내가 이 책을 다시 펼친 까닭은 아마도 내 자신의 게으름을 질책하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박사는 나를 부끄럽게도 하고 용기를 주기도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같기도 하다가 결국 그와 나 사이 차이점을 인정하게 되면 또 한없이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복합적인 느낌 속에서 다시 책을 펼쳐 든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났고 1950년 교토 대학에 입학하였다. 교토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쿄토라는 도시가 마음에 들었고 누나가 살고 있어서 하숙하기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일본인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유가와 히데키 박사가 있는 학교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수학의 길을 걷기로 결심을 하는데 '수학이라는 학문 속에서 나 자신의 창조성이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 몰랐고 석사 과정에 들어간 후에도 그 계기를 잡지 못해 무척이나 애태웠다'고 쓰고 있다. 그는 논문과 자기 이론의 창조에 관련한 고민으로 논문을 써야 하나, 쓰지 말아야 하나를 계속 고민하다가 어떤 계기(책에선 길게 묘사되어 있지만 생략함)로 '뭐든지 상관없으니 하여간 논문을 쓰자'고 결심하고 석달에 걸쳐 첫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논문은 27살에 필드상을 받은 프랑스 수학자 세레(Serre)로부터 '당신의 논문은 인용한 참고문헌에 대부분 씌어진 것' 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혹평만 받았지만 역시 쓰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첫째로 참고문헌을 상세히 이해하지 못한 실수를 범하긴 했지만 덕분에 논문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고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관계될 만한 문헌을 독파하여 철저히 알아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때문이고, 둘째는 이 졸작의 논문을 통하여 하나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고 이 발판을 기점으로 다음 논문을 쓰면 그것은 첫번째 논문보다 확실히 좋은 것이 되기 때문이며, 세째로는 논문을 씀으로써 자기 나름대로 착상을 키우려는 창조의 자세를 실제 체험을 통하여 배우게 되는데 이것이 가장 가치있는 성과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첫번째 논문 뒤 완성 중이던 두번째 논문을 계기로 하버드 대학에 유학하게 된다. 그 뒤로는 지도교수 이야기, 영재 동료 이야기들이 등장했다가 컬럼비아 대학 교수가 되었을 때 있었던 일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일들, 그리고 중간중간 주제 있는 사색적인 글들이 이어진다. 이런 사색을 통해 그가 던지는 화두를 함께 고민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다음 장에는 '도전하는 정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요약하자면 '특이점 해소'라는 현대 수학의 난제에 흥미를 느끼고 이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가진 뒤로 그가 배우고 연구해 온 모든 것들이 특이점 해소를 항하여 수렴해 가고 그런 중에 연구와 창조하는 기쁨을 체험한 이야기이다. 특이점 해소 문제에 매력을 느낀 까닭은 책 첫머리에 나오는데 부처가 사는 세계와 사람이 사는 세계로 사영한 부분이 나에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또한 대략 여기까지 오다 보면 왜 이 책의 제목이 '학문의 즐거움'인가를 짐작하게 된다. 그렇지만 즐거움이 거저 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기 이런 표현을 대신할 한 소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나는 눈앞에 나타난 문제를 처음에는 막연히 쳐다만 본다. 주변의 학자들이 그 문제에 맞붙는 모습도 그저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안에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혹은 어떤 문제에 몰두하면 좋은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문제의 윤곽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우선 그렇게 되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창조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에 있는 욕망를 발동시켜서 비약하려 하고 행운을 잡으려고 한다. 운(運)이라는 불연속적인 비약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서 문제에 몰두하기 시작하는데, 그때 자기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항상 소심(素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수학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발상이며 아이디어다. 그 아이디어는 문제의 입장에 서서 자기 자신과 문제가 혼연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느긋하게 기다리고, 기회를 잡을 행운이 오면 나머지는 끈기이다. 나는 남보다 두 배의 시간을 들이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끈기를 의식적으로 키워 왔다. 끝까지 해내지 않으면 그 과정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두뇌가 우수하더라도 업적을 쌓지 않으면 수학자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노력이란 말은 나에게는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2002.02.15)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술?!  (0) 2002.03.09
콩도르세의 파라독스  (1) 2002.03.07
조건있는 사랑  (0) 2002.01.28
아인슈타인과의 두뇌게임  (0) 2002.01.26
신포도기제  (0) 2002.01.22
Posted by 세렌디피티
,
나는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것은 이기심으로부터의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곧 그것이 기분을 좋게 해주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양이 되고 싶지는 않다.
 - 막스 슈티르너(1806~1856) <유일자와 그 소유>
자기의 사랑에 이기심이 전혀 배어 있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지위나 재산이라는 물질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람은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마음, 자기에 대한 사랑 그런 것들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런 해석이 아닐까.
결국 사람은 기쁨을 느낄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사랑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다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양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말에는 찬반 양론이 있을지도 모른다.
로맹 롤랑은 희생에 대해서 '자기 희생이 뒤따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톨스토이의 생애>)' 라며 극단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희생이 결국은 자기에게도 오히려 행복으로 느껴진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걸 두고 희생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 박동규

내 생각은 이러하다.
나는 사랑에 자기 희생이 따르고 안따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희생으로 생각하느냐 당연으로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또다시 개인차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만약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 작아서 사랑이 스트레스가 되고 괴로움이 된다면, 앞길 조차도 험난한 가시밭길이라면, 그 사람은 그 사랑을 멈춰야 한다. 자신의 내부에서 정화하고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과 스트레스라면 밖으로 돌출되기 마련이고 결국 상대방까지 괴롭히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상대에게 요구하지 말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상대를 찾으라.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고 싶은 사랑이라면 자신의 희생을 상대에게 티내지 말라. 결국 서로에게 짐만 될지니..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콩도르세의 파라독스  (1) 2002.03.07
학문의 즐거움  (0) 2002.02.15
아인슈타인과의 두뇌게임  (0) 2002.01.26
신포도기제  (0) 2002.01.22
생각하는 사물(Things That think)  (1) 2002.01.19
Posted by 세렌디피티
,
아인슈타인과의 두뇌게임
나대일 지음/동아일보사/초판 1993년(초판2쇄 1993년)
우리은하는 대우주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저 보일락 말락, 있을듯 말듯한 점에 불과하다. 우리은하는 태양과 같은 별 1000억개 정도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은하 안에 그렇게 많은 수의 별이 있는데, 우리은하와 비슷한 크기의 다른 은하 역시 무수히 많다. 관측되는 다른 은하의 숫자 역시 대략 1000억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무수한 그런 은하 중 보일락 말락한 우리은하, 그 안에 있는 보일락 말락한 태양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지구에 투영된 모든 것이란 그저 덧없게 보인다. 영양왕의 호연지기, 한니발의 분노, 두보의 비애는 모두 티끌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대우주는 이렇게 보는 이를 항상 겸손하게 한다. -나대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자는 책 머리말에서 '현대 물리학의 최대 발견이었던 상대성이론과 이를 바탕으로한 현대 우주론을 되도록이면 쉽게 써보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물론 '쉽게'라는 표현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아인슈타인이 쉽게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직접 기술한 <상대성이론>이란 책도 아인슈타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어린 손녀딸도 이해할 만큼 쉽게 쓴 책이라나.. 이런 일화 때문인지 저자도 알기 쉽게 쓰는 것의 어려움을 여러차례 토로하고 있지만, 내 개인적인 평가로는 아인슈타인이 직접 쓴 <상대성이론>보다는 이 책이 쉬운 것 같으니 저자의 노력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저자 나대일 박사의 세미나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저자의 약력을 들춰본 결과(1990 ~ 1992년 미국 버클리대 입자천체물리연구소, 1993년 표준과학연구원 천문대 선임연구원이라고 되어 있음) 1993년, 그러니까 내가 대학 3년이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러나 세미나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고(^^;) 우리과 교수님과 농담을 나누던 모습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뒤 시간이 흐르고 나는 나대일 박사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서 또 얼마 뒤, 나박사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을 발견했는데 마이클 크라이튼의 유명한 소설 <쥬라기 공원>에서다. 바로 묘한 분위기의 수학자 닥터 말콤이다. 말콤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나박사의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그저 주관적인 이미지일 뿐이니까.. 게다가 지금은 그런 이미지마저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암튼 각설하고 책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 책의 재미있는 구성 중 하나는 과학사 에피소드들을 중간 중간 끼어놓아 독자들이 재미를 느끼도록 배려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숨에 상대성이론으로 직행하지 않고 빠른 템포로 과학사(물리학)를 훝고 지나간다. 상대성이론을 이야기하려면 뉴턴의 고적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고, 또 만유인력과 맥스웰 방정식을 이야기하려면 케플러와 갈릴레이, 패러데이 이야기도 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나서 아인슈타인이 16살에 던졌다는 질문 "만약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달린다면 빛은 어떻게 보일까?"에 도착한다. 그리고 종종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을 우리에게 소개하면서 책 제목처럼 두뇌게임(?)을 유도한다. 여기 책의 한 귀절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끝없는 호기심 탐구가 우리를 즐겁게 한다.

    '고전역학과 전자기학의 충돌'이란 바로 이렇게 신성한 상대성원칙을 전자기학의 총아로 등장한 빛이 노골적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 문제는 금세기 초 모든 과학자들을 괴롭혔던 장본인으로, 이 때문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금세기초 '모든 문제는 빛으로 통한다'는 농담이 학계에 떠돌았을 정도였다.
    그러면 과연 빛이 어떻게 상대성원칙을 위반하고 있는지를 좀 더 자세히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을 소개한다.
    밀폐된 방에 어떤 아가씨가 손거울을 들고 앉아있다고 하자. 방은 엄청나게 크고 그 한 구석에는 엄청나게 밝은 촉광의 전구가 빛을 발하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방 어디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손거울을 통해 비추어 볼 수 있다. 이 경우 상대성 원칙에 따른 그녀는 그녀가 있는 방 전체가 정지해 있는지, 아니면 일정한 상대속도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런데 어는 한순간 그녀가 손거울을 들고 전등빛에서 멀어져가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고 하자. 그녀의 달리는 속도가 광속에 이르면 전등에서 나오는 빛은 그녀의 손거울에 다다르지 못하게 된다. 그 순간 그녀의 손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사라진다. 이 때 그녀는 '아하! 나는 빛의 속도로 달리고 있구나!'하고 그녀가 달리는 속도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그녀가 달리는 속도를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상대성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이처럼 아인슈타인은 평소에 명쾌한 사고실험을 좋아했다. 혼자 사색에 잠길 때마다 그는 이러한 실험방법을 궁리해냄으로써 수십명의 우수한 학자들이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수학계산이나 논리전개를 대신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앞서 아인슈타인이 16세 때 던졌던 질문 "사람이 빛의 속도로 달리면 빛은 어떻게 보일까?"를 상기해 보자. 이 역시 관측자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였을 때 '빛의 파동성이 사라진다'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소개된 아인슈타인의 두개 사고실험 모두 관측자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다다르기만 하면 맥스웰방정식이 예언하는 빛의 파동성이 깨어지고 고적역학에 있어서의 신성한 상대성 원칙이 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왜 하필 물체의 운동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이런 이상한 현상들이 빚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상대성원칙은 빛이 수반되는 전자기현상에서만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관측자가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틀린 것일까. 이런 문제들이 바로 금세기 초 많은 석학들을 괴롭혔다. 이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20세기 최대의 이론으로 알려진 특수상대성이론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2002.01.26)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문의 즐거움  (0) 2002.02.15
조건있는 사랑  (0) 2002.01.28
신포도기제  (0) 2002.01.22
생각하는 사물(Things That think)  (1) 2002.01.19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0) 2002.01.19
Posted by 세렌디피티
,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여우 한마리.
그래도 자기비하 보다는 훨 나은데 자기합리화했다고? 인기도 없어라 가엾은 여우 한마리.
못따먹는다 죽어도 말 안하고 저건 시큼해서 못먹는 맛없는 포도라고 외치며 돌아선 여우 한마리.
자존심 강한 여우 한마리.

* 오늘 문득 신포도기제가 생각난 것은 나도 차라리 저 여우처럼 자기합리화나 해버릴까 하는 생각에서다.
내가 갖지 못하는 것,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자신을 탓하기만 한다면 너무 기죽는 일 아닌가.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건있는 사랑  (0) 2002.01.28
아인슈타인과의 두뇌게임  (0) 2002.01.26
생각하는 사물(Things That think)  (1) 2002.01.19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0) 2002.01.19
하이젠베르크를 인용하며  (0) 2001.12.23
Posted by 세렌디피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