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을 주옵시고
제가 변화시킬수 있는 것에는 도전하는 용기를 주시옵고
또한 그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From KIDS BBS
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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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빈곤은 지식의 빈곤. 경험의 빈곤. 감정의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요,
말솜씨가 없다는 것은 그 원인이 불투명한 사고방식에 있다.

- 피천득
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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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자유의지로 행할지니

첫째, 마음의 순결을 유지하라
둘째, 마음으로 서로를 믿으라
셋째,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라
넷째, 마음의 진실을 잃지 마라
다섯째, 그리하여 타인을 위한 희생으로 영원을 얻을지어다.

From 황미나 - "다섯개의 검은 봉인"중에서
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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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슐만 - [사랑은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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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냉철하고 논리적이었다. 예민함, 신중함, 총명함, 날카로움, 그리고 치밀함 - 나는 이 모든 것의 정수였다. 나의 두뇌는 발전기처럼 강력하고 화학자의 저울처럼 정확했으며, 외과 의사의 메스만큼이나 예리했다. 그리고 - 생각해 보라! - 나는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렇게 탁월한 지성을 갖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내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인 피티 벨로우스가 그 좋은 예이다. 우리는 나이도 같고 배경도 같지만 그 녀석은 황소처럼 어리석었다. 좋은 녀석이긴 했지만 이층 머릿속에 든 것이 없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내가 즉시 맹장염이라고 진단을 내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피티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 "설사약을 먹으면 안 돼. 의사를 불러올게."

"너구리." 하고 그는 불명료하게 중얼거렸다.

"너구리?" 나는 뛰어가다가 멈추고 물었다.

"난 너구리털 코트가 갖고 싶어." 그는 울부짖었다. 나는 그의 문제가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라는 걸 눈치챘다.

"왜 너구리털 코트를 갖고 싶어하지?

"그걸 진작 알았어야만 했어." 그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탕탕 쳐가면서 울부짖었다. "찰스턴 댄스가 리바이벌 되었을 때, 이미 너구리털 코트도 리바이벌 될 것을 알았어야만 했어. 바보처럼 난 교과서 사는 데 돈을 다 써버렸으니 이제 너구리털 코트를 살 수가 없어. 너구리털 코트를 살 수만 있다면 난 무엇이든지 하겠어. 무엇이든지."

한치의 오차도 없는 기구인 내 두뇌는 그 순간 고속기어로 변속되었다.

"무엇이든지?" 나는 녀석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물었다.

"무엇이든지." 하고 녀석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확인해 주었다. 나는 생각에 잠겨 턱을 쓰다듬었다. 우연히도 나는 우리 아버지가 대학생 때 입었던 너구리털 코트를 하나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우리 집 다락 속 트렁크에 들어 있었다. 또한 우연히도 피터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었다. 아니, 그가 꼭 그것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선권은 갖고 있었다. 나는 지금 그의 애인 폴리 에스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폴리 에스피를 탐내 왔었다. 하지만 이 젊은 여자에 대한 나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감정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해 두고 싶다. 물론 그녀는 남자들의 감정을 흥분시키는 타입의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가슴이 머리를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영리하게 계산된 완전히 정신적인 이유로써 폴리를 원했던 것이다.

나는 법대 1학년이었다. 따라서 몇 년 후면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될 것이었다. 나는 변호사의 경력을 증진시키는 데 있어서 부인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관찰해 온 바에 의하면, 성공적인 변호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아름답고, 우아하고, 지적인 여자들과 결혼했다. 그 중 한 가지만 빼고 폴리는 이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여자였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비록 아직 남자들이 그녀 사진을 벽에 붙일만큼 균형이 잡히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엔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이미 그렇게 될 자질이 엿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우아했다. 우아하다는 것은 그녀가 품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몸가짐은 곧았고 태도는 자연스러웠으며, 분명 최상의 혈통이라는 것을 자세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녀의 식탁 매너 또한 훌륭했다. 한번은 그녀가 '코우지 캠퍼스 코너'에서 그 집의 전문요리 - 구운 돼지고기 조각들과 그레이비, 잘게 썬 견과들, 그리고 한 국자의 소금에 절인 양배추가 들어 있는 샌드위치 - 를 손가락에 물기 하나 묻히지 않고 먹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적이지는 않았다. 사실 그녀는 지성과는 정반대 방행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내 지도를 받으면 그녀가 영리해지리라 믿었다. 어쨌든 노력해 볼 가치는 있는 여자였으니까. 사실 말이지, 못생기고 영리한 여자를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는 예쁘고 멍청한 여자를 영리하게 만드는 것이 더 쉬운 법이니까 말이다.

"이거 봐." 그는 내 팔을 열성적으로 잡으면서 말했다. "자네가 집에 가면 자네 노털에게 돈 좀 얻어낼 수 있지, 안그래? 그러면 너구리털 코트를 사게 내게 좀 빌려 줄 수 없겠나?"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을 해 줄 수 있지." 나는 수수께끼 같은 윙크를 던진 다음 가방을 들고 떠났다.

"자." 하고 월요일 아침에 돌아와서는 나는 피티에게 말했다. 나는 옷가방을 활짝 연 다음, 1925년에 우리 아버지가 입었던 커다랗고 털투성이의 짐승냄새가 나는 물건을 내보였다.

"아이고, 이것 좀 봐!" 피티는 경건하게 말했다. 그는 너구리털 코트에 처음엔 양 손을 그리고 다음엔 얼굴을 푹 파묻었다. "아이구, 이것 좀 봐." 그는 이 말을 열다섯 번인가 스무 번인가 중얼거렸다. "어때 마음에 드나?" 나는 물었다.

"그럼!" 그는 기름기가 번득이는 털가죽을 꽉 움켜쥐면서 소리질렀다. 그러자 곧 의심스러운 눈빛이 되었다.

"대신 무엇을 원하지?" "네 애인이야." 나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좋아, 거래는 이루어졌다." 그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다음 날 저녁, 나는 폴리와 첫 데이트를 했다. 그건 우선 탐색전이었다. 나는 그녀의 정신상태를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 얼마만한 노력을 해야 될 것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저녁식사를 사 주었다. "젠장, 그 저녁 한번 맛조타." 그녀는 레스토랑을 나오면서 말했다. 그 다음 나는 그녀를 극장에 데리고 갔다. "젠장, 끝내주는 영화군." 극장을 나오며 그녀는 말했다. 그런 다음 나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젠장, 뻑적지근한 저녁이었어." 그녀는 내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가슴이 천근 만근 무거운 채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해야 될 작업의 크기를 심각할 정도로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여자의 무식함은 끔찍할 정도였다. 그녀에게 정보를 공급해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우선 그녀는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고 여겨졌으며, 따라서 처음엔 그녀를 도로 피티에게 돌려줄까 하는 유혹도 생겼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풍부한 육체적 매력과 그녀가 실내에 들어올 때의 우아한 자태, 그리고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는 세련된 태도를 생각하고는 한 번 노력을 해 보리라 결심했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래왔듯이 이 일도 체계적으로 시작해 나갔다. 우선 나는 그녀에게 논리학을 강의했다. 법대생으로서 나는 마침 논리학을 수강하고 있었으므로 모든 것은 아주 수월했다.

"폴리." 나는 두 번째 데이트 때 그녀를 만나 말했다. "오늘밤엔 '놀'에 가서 이야기를 하기로 하지."

"이그, 멋있쪄." 한 가지 이 여자를 칭찬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도무지 반대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캠퍼스의 밀회장소인 '놀'로 가서 늙은 상수리나무 아래 앉았다. 그녀는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엇에 대해 얘기할건데?" 그녀가 물었다.

"논리학."

그녀는 잠시 생각해 본 다음 그것을 좋아하기로 결정했다.

"그거 되게 멋진데." 그녀는 말했다.

"논리학이란," 하고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사고에 대한 학문이지. 우리가 정확하게 사고하기 전에 우리는 논리학의 흔한 오류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되는거야. 오늘밤엔 바로 그것에 대해 얘기하기로 해."

"와우 다우!" 그녀는 즐겁게 손뼉을 치며 소리질렀다. 나는 주춤했으나 용감하게 계속했다. "우선 '단순화'라고 불리는 오류에 대해 이야기하지."

"좋아, 좋아." 그녀는 속눈썹을 깜박거리며 열심히 재촉했다.

"'단순화'의 오류는 무조건적인 일반화에 근거한 논리를 의미해. 예컨대, 운동은 좋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운동을 해야한다, 같은 것이지."

"옳은 말이야." 폴리는 진지하게 말했다. "운동이란 좋은거야. 운동은 신체도 단련시켜 주고 모든 것을 단련시켜 준단 말이야."

"폴리." 나는 온화하게 말했다. "그 논리는 오류야. '운동은 좋다'는 무조건적인 일반화지. 예를 들면,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운동이 좋은 게 아니고 나쁘잖아?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처방을 듣고 있어. 일반화를 시키려면 '타당성'이 있어야 되는거야. 운동은 '대개' 좋다거나 또는 운동은 '대부분'에게 좋다고 말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는거야, 알겠어?"

"모르겠어." 하고 그녀는 고백했다. "하지만 근사해. 더 해 봐, 더 해 봐!"

"내 옷소매는 그만 좀 끌어당겨." 하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고 그녀가 소매를 놓자 계속해서 말했다. "다음엔 '성급한 일반화'에 대해 이야기하겠어. 잘 들어. 너는 불어를 못 하고 나도 불어를 못해. 피티 벨로우도 불어를 못 하고. 따라서 미네소타 학생들은 모두 불어를 못 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어."

"정말이야?" 폴리는 놀라서 물었다. "아무도 못 해?"

나는 분노를 감추고 말했다. "폴리, 그건 오류야. 그 일반화는 너무 성급했어. 그런 결론을 뒷받침할 예는 너무 적어."

"그런 오류를 더 알고 있어?" 그녀는 숨가쁘게 물었다. "이건 댄스보다도 더 재미있는걸."

나는 절망의 파도와 싸우고 있었다. 이 여자와는 도무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 정말이지 아무런 진전도 없어. 그래도 계속하지 않는다면 죽도 밥도 아니겠기에 나는 계속했다. "다음엔 '근거없는 비난'의 오류야. 잘 들어 봐. 그것은 빌을 소풍에 데리고 가지 말자. 그 애를 데리고 갈 때마다 비가 오니까, 같은 거야."

"나도 꼭 그런 사람을 하나 알고 있어." 하고 그녀는 소리질렀다. "우리 고향에 있는 여자앤데...... 율라 베커라고 해. 언제나 그랬어. 그 앨 소풍에 데리고 갈 때마다......"

"폴리." 나는 날카롭게 말했다. "그건 오류야. 율라 베커는 비를 몰고 오지 않아. 그녀는 비와 아무 상관이 없단 말이야. 율라 베커의 핑계를 대면 넌 '근거없는 비난'의 오류를 범하는 거야."

"다시는 안 그럴게." 그녀는 깊이 뉘우치며 약속했다. "나한테 화났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야 폴리, 화나지 않았어."

"그렇다면 다른 오류에 대해 더 이야기해 줘."

"좋아. 이번엔 '상반되는 전제'의 오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그래, 그래." 그녀는 행복한 듯 눈을 깜박이며 짹짹거렸다. 나는 찡그렸으나 계속했다. "여기 '상반되는 전제'의 한 예가 있어. 만일 하느님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가 들 수 없을만큼 무거운 바위를 만들 수도 있지."

"물론이지." 그녀는 즉시 대답했다.

"하지만 만일 하느님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면 그는 그 바위를 들 수 있어야 돼." 라고 나는 지적했다.

"그렇지." 하고 그녀는 사려깊게 말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그런 바위를 만들 수 없겠군."

"하지만 하느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잖아." 하고 나는 일깨워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예쁘고도 텅 빈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거, 혼란이 오는데." 하고 그녀는 시인했다.

"물론이지. 왜냐면 논리의 전제가 서로 상반되면 논리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이야. 만일 무한한 힘이 있다면 움직일 수 없는 물체란 있을 수 없지. 또 만일 움직일 수 없는 물체가 있다면 무한한 힘이란 있을 수 없고. 알겠어?"

"이 짜릿한 것에 대해 더 얘기해 줘." 그녀는 열심히 졸랐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오늘은 그만 하는 것이 좋겠어. 자 집에 데려다 줄게. 오늘 배운 것들을 복습해 봐. 내일 밤 다시 계속할 테니까."

끝내주는 밤 시간을 보냈다고 나를 확신시켜 주는 그녀를 여기숙사에 데려다 주고 나는 우울하게 내 방으로 돌아왔다. 피티는 침대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너구리털 코트는 그의 발치에서 거대한 털복숭이 짐승처럼 구겨진 채 놓여 있었다. 잠시 동안 나는 그 녀석을 깨워서 네 애인을 도로 가져가라고 할까 생각했다. 내 계획이 실패로 끝나리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것 같았다. 이 여자는 마치 방수시계처럼 논리를 허용하지 않는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나는 재고했다. 난 이미 하루 저녁을 허비했다. 또 하루 밤을 허비할 수도 있겠지. 누가 아는가? 혹시 그녀 정신의 꺼려 버린 분화구 어디에선가 타다 남은 불씨가 아직도 연기를 내뿜고 있을런지 말이다. 분명 그것은 희망이 가득 찬 전망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저녁, 다시 그 상수리나무 아래 앉아 나는 말했다. "오늘밤, 첫 번째 오류는 '동정심에의 호소'라는 것이야."

그녀는 즐거움에 몸을 떨었다.

"잘 들어 봐." 나는 말했다. "한 남자가 어떤 직장에 지원을 한다고 생각해 봐. 사장이 그 사람에게 자격을 묻자 그 사람은 자기에게는 아내와 여섯 자녀가 있는데 아내는 불구이고 아이들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으며, 신발도 침대도 없고, 지하실엔 연탄도 없는데 겨울은 닥쳐 오고 있다고 대답을 하는 거야."

한줄기 눈물이 폴리의 뺨에 굴러내렸다. "오, 그건 너무 끔찍해. 끔찍하단 말야." 그녀는 흐느꼈다.

"그래 그건 끔찍해." 나는 동의했다.

"하지만 이건 논리에 맞지 않아. 그 남자는 자신의 자격에 대한 사장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그 대신 그는 사장의 동정심에 호소한 거야. 그는 '동정심에의 호소'라는 오류를 범했어. 알겠어?"

"손수건 갖고 있어?"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나는 손수건을 건네주고 그녀가 눈물을 닦는 동안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이번엔, " 나는 조심스럽게 조절된 어조로 말했다.

"'그릇된 유추'에 대해서 말하겠어. 여기 한 예가 있어. 학생들은 시험을 치르는 동안 교과서를 보도록 허용되어야만 한다. 사실, 외과의사도 수술하는 동안 엑스레이를 보고, 변호사들도 재판하는 동안 서류를 보며, 목수들도 집을 지을 때 청사진을 보지 않는가? 그렇다면 왜 학생들이 시험 볼 때 교과서를 보면 안 된단 말인가?"

"고것 참." 하고 그녀는 열정적으로 말했다. "근래에 들은 얘기 중 가장 삐까번쩍한 아이디어군."

"폴리." 나는 퉁명스럽게 외쳤다.

"그 논리는 틀린 거야. 의사나 변호사나 목수는 자기네들이 얼마나 배웠는지 시험을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니잖아. 하지만 학생들은 시험을 치고 있는 거야. 상황이 아주 다른 거지. 따라서 그들 사이에 유추관계란 있을 수 없어."

"하지만 난 그래도 그 아이디어가 좋아." 하고 폴리가 말했다.

"바보 같으니." 하고 나는 투덜거렸다. 나는 완강하게 버텨나갔다. "다음엔 '사실과 상반되는 가정'의 오류에 대해 얘기해 보자."

"그건 맛있을 것 같군." 하는 것이 폴리의 반응이었다.

"들어 봐. 만일 퀴리 부인이 우연히 우라늄 덩어리가 들어 있는 서랍 속에 사진 감광판을 놓아 두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세계는 라듐에 대해 모르고 있을 것이다."

"맞아, 맞아." 폴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퀴리 부인 영화 봤어? 오우, 나는 홀딱 반해 버렸어. 윌터 피젼이란 배우는 환상적이야. 그 배우는 나를 뇌살시켰어."

"잠시만이라도 피젼 씨를 잊을 수 있다면 말이야." 하고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나는 그 진술이 오류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 퀴리 부인은 나중에라도 라듐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거지. 아마 다른 사람이 발견했을 수도 있고."

"윌터 피젼을 더 많은 영화에 출연시켜야 돼." 폴리는 말했다. "요샌 그 사람을 통 볼 수가 없거든."

딱 한 번만 더 해 보자, 하고 나는 결심했다. 딱 한 번만 더. 피와 살을 가진 인간에게는 참을 수 있는 한도가 있는 법이다. "다음 오류는 '우물에 독 풀기'라는 거야."

"어머나, 멋져!" 그녀는 기뻐서 침을 꼴깍 삼켰다.

"두 남자가 토론하고 있다. 첫째 남자가 일어나서 이렇게 말한다 - 저 사람은 흉악한 거짓말쟁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 - 자, 폴리, 생각해 봐. 열심히 생각해 봐. 뭐가 잘못됐지?"

나는 그녀의 크림빛 눈썹이 생각을 집중시키느라 찌푸려지는 것을 자세히 지켜보았다. 갑자기 한줄기 지성의 빛이 - 내가 본 바로는 최초로 - 그녀의 눈 속에 떠 올랐다.

"그건 공평하지 않아." 그녀는 분개하여 말했다. "그건 조금치도 공평하지 못해. 아직 말을 시작도 하기 전에 거짓말쟁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런 기회도 가질 수가 없잖아."

"맞았어!"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백 퍼센트 맞았어. 그건 공평하지 않아. 첫 번째 남자는 아무도 물을 마시기 전에 '우물에 독을 푼' 거야. 그 사람은 아직 시작도 하기 전에 자기 상대방을 불구로 만든 거지...... 폴리, 난 네가 자랑스러워."

"체." 하고 그녀는 기쁨으로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알았지? 이것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다만 집중하면 되는 거야. 생각하고 - 조사하고 - 평가하는 거지. 자,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복습해 보자."

"그래 시작해 봐." 그녀는 경쾌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닷새 밤 동안 녹초가 되어서야 일은 끝났다. 그러나 그건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나는 폴리를 논리학자로 만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제, 내 일은 끝났다. 그녀는 드디어 내게 가치있는 여자가 된 것이다.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내게 어울리는 아내가 되었으며, 나의 여러 채의 저택에 걸맞는 안주인이 되었으며, 부자로 태어날 내 자녀에게 걸맞는 어머니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그 반대이다. 마치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완벽한 여자를 사랑했듯이 나도 내 작품을 사랑했다. 나는 다음 번에 만날 때, 그녀에게 나의 감정을 알리려고 결심했다. 드디어 우리의 관계가 아카데믹한 것으로부터 로맨틱한 것으로 바꾸어질 때가 온 것이었다.

"폴리." 나는 다음 번 우리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만났을 때 말했다. "오늘밤엔 오류에 대해 토론하진 않겠어."

"아우, 제기랄." 그녀는 실망해서 말했다.

"이것 봐."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베풀어 주면서 말했다. "우리는 그 동안 닷새 저녁을 같이 보냈어. 그 동안 서로 아주 잘 지내왔지. 우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분명해."

"'성급한 일반화'군." 그녀는 말했다. "겨우 다섯 번의 데이트를 가지고 어떻게 우리가 잘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지?"

나는 재미있어서 깔깔 웃었다. 이 귀여운 아이가 공부를 잘 했군. "이것 봐." 나는 관대하게 그녀의 손을 어루만져 주며 말했다. "다섯 번의 데이트로 충분해. 케이크의 맛을 알기 위해 케이크를 다 먹어 볼 필요는 없거든."

"그건 '그릇된 유추'야." 폴리는 즉시 말했다. "나는 케이크가 아니야, 여자지."

나는 아까보다는 덜 유쾌하게 웃었다. 이 아이는 아마도 너무 잘 배운 것인지도 몰라. 그렇다면 분명 최선의 방법은 간단하고 강력하며 직접적인 사랑의 선언일 것이다. 나의 거대한 두뇌가 적절한 말을 찾고 있는 동안 나는 잠시 쉬었다. 그리곤 시작했다.

"폴리, 난 너를 사랑해. 넌 내게 있어서 전 세계이고 달이자 별이며 우주의 성좌야. 제발 내 애인이 되어 주겠다고 말해 줘. 왜냐면 만일 네가 그렇게 해 주지 않으면 내 인생이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야. 그렇게 되면 나는 번민할 거고 음식도 거부할 것이며, 눈이 움푹 꺼져 비틀거리며 지표를 방황하는 폐인이 되고 말 거야." 팔짱을 낀 채 나는 자,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고 생각했다.

"'동정심에의 호소'로군." 폴리가 말했다.

나는 이빨을 갈았다. 나는 피그말리온이 아니었다. 나는 프랑켄슈타인이었고 내가 만든 괴물은 내 목을 조이고 있었다. 나는 내 속에서 파도치는 공포의 조수(潮水)에게 미친듯이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나는 침착해야만 했었다.

"그래, 폴리."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확실히 오류에 대한 것을 많이 배웠구나."

"그렇고 말고." 그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폴리, 누가 너에게 그것들을 가르쳐 주었지?"

"당신이."

"그래, 그렇다면 넌 내게 빚을 지고 있는 거야, 안 그래? 만일 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넌 결코 오류에 대해 배우지 못했을 거야."

"그건 '사실과 상반되는 가정'이야." 그녀는 즉시 말했다. 나는 눈썹에서부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폴리." 나는 쉰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모든 것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돼. 말하자면 그것들은 그저 강의실에서 통하는 것들이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실생활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잘 알잖아."

"그건 '단순화'의 오류야." 그녀는 장난치듯이 손가락을 내게 향해 흔들면서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황소처럼 울부짖으며 벌떡 일어섰다.

"내 애인이 되어 줄 거야, 말 거야?"

"난 못 해." 그녀는 대답했다.

"왜 못 해?" 나는 다그쳤다.

"왜냐면 오늘 오후에 나는 피티 벨로우스에게 애인이 되어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야."

나는 그 파렴치한 행위에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다. 약속을 해 놓고서, 거래를 해 놓고서, 악수까지 해 놓고서! "치사한 놈!" 나는 커다란 잔디뗏장을 걷어차며 소리질렀다. "폴리, 넌 그 녀석하고는 사귈 수 없어. 그놈은 거짓말쟁이고 사기꾼이야. 그놈은 치사한 놈이란 말이야."

"우물에 독을 푸는군." 폴리는 말했다. "그리고 소리지르지 마. 나는 소리지르는 것도 오류라고 생각해."

혼신의 힘을 다해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좋아." 나는 말했다. "너는 논리학자야.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도대체 어떻게 나를 버리고 벨로우스를 선택할 수 있니? 나를 봐라 - 뛰어난 학생이고 탁월한 지성인이며 장래가 보장되어 있어. 피티를 봐라 - 돌대가리에다가 유행만 좇아다니고 끼니마저 걱정해야 되는 인간이야. 왜 피티 벨로우의 애인이 되기로 했는지 단 한 가지 만이라도 논리적인 이유를 내게 말해 줄 수 있니?"

"물론이지." 폴리는 선언했다. "그 앤 너구리털 코트를 갖고 있거든."
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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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중에서)

아래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일과 일반 교양을 위한 독서와 관련하여 쓴 것이므로 취미를 위한 독서와는 무관함을 밝혀둔다.

1.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졌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 값은 싼 편이다. 책 한권에 들어 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2. 하나의 테마에 대해 책 한 권으로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비슷한 관련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관련서들을 읽고 나야 비로소 그 책의 장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그 테마와 관련된 탄탄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 없이는 선택 능력을 익힐 수 없다. 선택의 실패도 선택 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료로 생각한다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말라. 수준이 너무 낮은 책이든, 너무 높은 책이든 그것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시간은 금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책이라도 읽다가 중단하는 것이 좋다.

5. 읽다가 중단하기로 결심한 책이라도 일단 마지막 족까지 한 장 한 장 넘겨 보라.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속독법밖에 없다.

7.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꼭 메모를 하고 싶다면 책을 다 읽고 나서 메모를 위해 다시 한 번 읽는 편이 시간상 훨씬 경제적이다. 메모를 하면서 책 한 권을 읽는 사이에 다섯 구너의 관련 서적을 읽을 수가 있다. 대개 후자의 방법이 시간을 보다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다.

8. 남의 의견이나 북 사이드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라. 최근 북 가이드가 유행하고 있는데, 대부분 그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주석에는 때때로 본문 이상의 정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활자로 된 것은 모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도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11. '아니, 어떻게?'라고 생각되는 부분(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을 바견하게 되면 저자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저자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 보라. 이런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그 정보는 엉터리일 확률이 아주 높다.

12. 왠지 의심이 들면 언제나 원본 자료 혹은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말라.

13. 번역서는 오역이나 나쁜 번역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번역서를 읽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안흔 부분이 있으면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지 말고 우선 오역이 아닌지 의심해 보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 축적한 지식의 양과 질, 특히 20,30대의 지식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
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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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져간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곧 잊어버리게 될 어느 날 아침,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는 문득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이다.
잔인한 햇빛을 받으며, 새로운 날을 위한 무기와 용기를 몽땅 빼앗긴 채. 자신을 가다듬으려고 눈을 감으면, 살아온 모든 순간과 함께, 그는 다시금 가라앉아 허탈의 경지로 떠내려간다. 그는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고함을 쳐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고함 역시 그는 빼앗긴 것이다. 일체를 그는 빼앗긴 것이다!) 그리고는 바닥 없는 심연으로 굴러 떨어진다. 마침내 그의 감각은 사라지고 그가 자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해체되고 소멸되어 무로 환원해버린다.
다시금 의식을 되찾아 전율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벌떡 일어나 낮의 세계로 뛰쳐나가야만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을 때,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불가사의한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을 해내는 능력을. 지금까지 그랬듯이 예기치 않게 또는 자진해서 이런 저런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고통스러운 압박을 느끼면서, 지나간 모든 세월을, 경솔하고 심각했던 시절을, 그리고 그 세월동안 자신이 차지했던 모든 공간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그는 기억의 그물을 던진다. 자신을 향해 그물을 덮어씌워 자신을 끌어올린다. 어부인 동시에 어획물이 되어 그는 과거의 자신이 무엇이었던가를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었나를 보기 위해, 시간의 문턱, 장소의 문턱에다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하기는 지금껏 그는 이날에서 저날로 건너가며 별 생각 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날마다 조금씩 다른 일을 계획하며 아무런 악의 없이. 그는 자신을 위한 숱한 가능성을 보아왔고, 이를테면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위대한 남자. 등대의 한 줄기 빛. 철학적인 정신의 소유자로.
아니면 활동적인 유능한 사나이로. 그는 자신이 작업복을 입고 교량 설치나 도로 건설 현장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야외에서 땀을 흘리며 분주히 돌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토지를 측량하는 모습을, 양철 식기에서 걸쭉한 스프를 떠내는 모습을, 묵묵히 일꾼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응당 그는 과묵한 편이었다.
또는 썩어빠진 목재 바닥에 불을 지르는 혁명가로. 그는 불같이 뜨겁고 열변을 토하며, 어떠한 모험이든 사양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선동적이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번민하고 좌절에 빠졌다가, 마침내 최초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혹은 향락을 추구하는 예지의 방랑아로, 기둥에 기댄 채 음악에서, 책에서, 고사본에서, 먼 이국에서, 오로지 향락만을 추구하는 방랑아로, 그는 다만 주어진 하나의 생을 살고, 주어진 하나의 자아를 소모시키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행복과 아름다움을 열망하고 광휘를 갈망하는, 오직 행복을 위해 창조된 하나의 자아를 말이다!
이렇듯, 그는 몇 해 동안 가장 극단적인 사상과, 공상에 찬 계획들에 몰두 했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이야말로 젊음과 건강을 누리고 있던 까닭에, 아직 얼마든지 시간이 있는 것으로 여겼었고, 닥치는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대하였다. 김이 나는 한끼의 식사를 위해 학생들의 공부를 돌봐주었고, 신문을 팔았고, 한 시간에 5실링을 받으면서 눈을 치웠으며, 그러는 틈틈이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들을 연구하였다. 이것저것 가릴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고학생으로서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다가, 어느 신문사에 입사함과 동시에 그곳을 사직했다. 신문사에서는 그에게 새로이 발명된 치아 송곳에 관해, 쌍둥이 연구에 관해, 슈테판 성당의 돔의 복구 공사에 관해 기사를 쓰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무전 여행을 떠났다. 도중에 자동차들을 세워 탔고, 자신도 잘 모르는 친구가 또 제 삼자의 주소를 적어준 것을 써먹으며, 이곳저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가는 다시 여행을 계속했다. 이렇게 그는 유럽을 누비며 방랑을 하다가는 갑자기 굳은 결심을 좇아 다시 되돌아왔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결정적인 직업으로 여겨지진 않았지만, 어떻든 쓸모있는 듯한 직업을 얻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해서 합격을 했다. 어떠한 기회에 부딪혀도 그는 긍정을 했던 것이다. 우정에도, 사랑에도, 무리한 요구에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항상 일종의 실험으로서, 또한 몇번이고 거듭될 수 있는 것으로서였다. 그에겐 세계라는 것이 취소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고 자기 자신까지 취소가 가능한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자신에게 30세의 막이 오르리라고는, 판에 박힌 문구가 자신에게도 적용되리라고는, 또한 어느 날엔가는 자신도 무엇을 진정 생각하고, 무엇을 진정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한순간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천 한 개의 가능성 중에서 천의 가능성은 이미 사라지고 시기를 놓쳤다고는---혹은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니까 나머지 천은 놓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껏 한번도 의혹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제껏 무엇 하나 겁내본 적이 없었다.
지금에야 그는 자신도 함정에 빠져 있음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From 잉게보르크 바흐만(Ingehorg Bachmann) "삼십세" 첫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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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
권태와 어느 안정감 ― 소시민성 속에 자기를 고정시키려는 의도와, 또 그 의도의 무용함과 번거로움을 의식하는 데서 오는 텅 빈 공허감이 내 가슴을 찬 바람 불 듯 지나간다.
감정도 애증도 다 멀어진 느낌. 가정, 직장, 나, 국가, 사회...... 이런 단어들이 아무 연결도 없이 내 머리를 지나갔다.

1월 20일
결별은 쉬운 일. 그러나 그 다음이 항상 문제인 것이다. 사고는 항상 사실적인 힘임을 믿고 있다. 끊겠다는 의지가 끊는 행위와 같은 것을 뜻하는 셈이다. 그러나 사실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한 미소나 한 눈동자, 한 목소리를 기억의 표면에서 말살해 버리는 것은...... 많은 극기와 시간의 풍화 작용의 도움이 필요하다. 잊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관념이 긍정한 행위를 우리의 감정이 받아들이기에는 또 하나의 훈련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듯이 완전한 '자유 의지'는 아닌 것 같다.

From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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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개개인은 그의 열등 감정을 보상할 목적에 따라서 그의 '사는 방법', 그의 성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열등 감정에 괴로워하는 것, 그리고 우월적인 위치를 향해서 가려는 것을 뜻한다(Adler의 말)."
건강하기 위해서는 이타(利他)의 감정을 길러야 한다.
언제나 자기를 넘고 나올 것, 용기와 합리적인 낙천주의로.
행위에의 공포, 생활에의 공포.
아들러(Adler) ― 열등성, 자네트(Jannet) ― 신경 쇠약.
프로이드(Freud) ― 거센 콤플렉스, 융(Jung) ― 내향성.
열등 감정은 소수 민족에 있어서도 발견된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보다 조금 더 재능이 있는 동배(同輩)다.
열등 감정은 감정적으로는 공포로 표시된다.

열등성
사회적 결과 ― 중상(中傷), 질투, 타인의 소유물에 대한 욕망, 간계(奸計), 또는 공격성.
도덕적 결과 ― 성(性)의 현실에 대한 용기의 결여, 직업의 선택에 대한 용기의 결여.
열등자는 자기의 예민한 상태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자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급격한 자극, 예를 들면 알코올이나 성적 충동이나 마취제 등으로 달려가는 일이 있다.

"약간 구라파적으로 세련된 미개인들에 있어서는 유럽*콤플렉스(Europa-komplex)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과, 그들의 피부색에 의한 열등 감정을 볼 수 있다(Jung의 말)."
열등 감정의 분위기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라는 두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지식' 속에서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과 우리에 적합한 것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없다고 생각되는 것을 몸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찬탄하는 것 같은 류(類)의 사람을 우리는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것이다.

열등 감정의 2,3의 동의어 ― 죄책의 감정, 무력의 감정, 불안정의 감정.
열등 콤플렉스는 외적인 속박(입장이 거북한 것, 몰이해, 박해 등)의 무의식적 고정 관념에서 생겨나온 억압의 한 방법이다. 자기 신뢰의 결여.
내면적 생활에의 도피, 내적으로는 맘대로이고 외적으로는 습관에 따른다.

열등자에 있어서 타인과의 협동은 심리적인 절도(節度)의 실마리가 된다.
어떻게 나를 현실에 대해서 적합시키고 그를 직면해 가야하나?
그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냉정함과 현실적인 사고 방식이다.

우리의 기질적, 심리적 결함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자기 수련, 외적 성공의 가능성의 확정, 그 가능성에 대응하는 체계적인 목표를 세우고 언제나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자기 자신이 하는 마음의 수련과, 정연하게 한 방식에 따른 노동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우리는 유유히, 그러나 확실히 목적에 가까이 간다.

나의 주위와 활동을 나의 적극적인 징후(徵候)에 집중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최고의 능률을 끌어내도록 결심한다.
규칙적 생활, 일정의 성과, 책임을 갖는 것, 열등자에게는 기쁨의 분위기를 주고 기쁨을 다시 배우게 해야 한다.
기쁨은 생명력을 발산하고, 정신과 육체의 진환 활동(進還活動)에 자극을 주어 행동에 임하게 하고, 비애 속에 들어가 있던 인간을 외광(外光)으로 향하게 하고 수많은 억압을 치워 없애는 것이다.

From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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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미빛 뺨, 앵두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를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이십의 청년보다 육십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고뇌, 공포, 실망 때문에 기력이 땅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마음이 시들어 버리는 것이다.

육십세이든 십육세이든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놀라움에 끌리는 마음,
젓먹이 아이와 같은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
삶에서 환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이다.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간직되어 있다.
아름다움, 희망, 희열, 용기, 영원의 세계에서 오는 힘.
이 모든 것을 갖고 있는 한
언제까지는 그대는 젊음을 유지할 것이다.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냉소라는 눈에 파묻히고 비탄이란 얼음에 갇힌 사람은
비록 나이가 이십세라 할지라도 이미 늙은이와 다름없다.

그러나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세 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일 것이다.

- Samuel Ullman의 시 'Youth'를 조동성이 의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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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누구를 필요로 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자유를 원했으나 그 끝에 이르러 이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또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는 비로소 존재한다
나는 세상 어느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삶에 있어서 나를 지탱해 온 힘은
언제나 항상 늘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아 주는
누군가의 시선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언제나 늘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아 주는 누군가의 시선
이것이 나를 수렁에서 건져준 힘이었다

류시화님의 딱정벌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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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다스리는 글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덕은 겸양에서 생기며
지혜는 고요히 생각하는 데서 생기느니라.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하는 데서 생기느니라.
눈을 조심하여 남의 그릇됨을 보지 말고
맑고 아름다음을 볼 것이며
입을 조심하여 실없는 말을 하지 말고
착한 말, 바른 말, 부드럽고 고운 말을 언제나 할 것이며
몸을 조심하여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라.
어른을 공경하고 덕있는 이를 받들며
지혜로운 이를 따르고 모르는 이를 너그럽게 용서하라.
오는 것을 거절말고 가는 것을 잡지말며
내몸 대우없음에 바라지 말고
일이 지나갔음에 원망하지 말라.
남을 해하면 마침내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오고
세력을 의지하면 도리어 재화가 따르느니라
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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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어둠 속을 걷는 듯한 끊임없는 사고의 혼란,
여기에서 오는 견딜 수 없는 심적 고통,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이해되는 순간적 기쁨.
오직 이런 경험을 맛본 사람만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 Albert Einstein(1879-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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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유혹 가운데에서 가장 강한 유혹은 원래의 자기와는 전혀 다른 존재이고 싶다는 바람, 그리고 자기가 도달할수 없거나 도달해서는 안되는 모범이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 헤르만 헤세(1877~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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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회사가 직원을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필기시험중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길에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데, 그곳에는 세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죽어가고 있는 듯한 할머니, 당신의 생명을 구해준 적이 있는 의사,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

당신은 단 한 명만을 차에 태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태우겠습니까? 선택하시고, 설명을 하십시오.
(더 읽기 전에 반드시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아마도 성격 테스트의 일종일 것입니다. 어떠한 답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은 죽어가는 할머니를 태워 그녀의 목숨을 우선 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의사를 태워 그의 은혜를 갚을 좋은 기회 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사에게 보답하는 것은 나중에도 가능한데 반해, 이 기회가 지나고 나면 이상형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응시자중 200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최종적으로 채용된 사람이 써낸 답은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도대체 뭐라고 했을까요?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의사선생님께 차 열쇠를 드리죠.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도록. 그리고 난 내 이상형과 함께 버스를 기다릴 겁니다."

가끔씩 우리는 완강한 제약을 포기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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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것은 이기심으로부터의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곧, 그것이 기분을 좋게 해주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양이 되고 싶지는 않다. - 막스 슈티르너(1806~1856), 독일 철학자
정말이지 사랑은 자기 만족일 뿐이다. 그래서 이기적인 것이고 연인들이 헤어지는 것도 다 그런 까닭이댜. 그래서 너무나 너무나 재미가 없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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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다. 그러나 우습지만 않고 슬프다. 그리고 또 즐겁에 읽히었다. 다시 읽어도 즐거울 것이다. 내용은 알되, 다시 읽어도 즐거운 것은 필자의 유머러스한 재변에 있다. 우스우나 얼른 잊혀지지 않는 것, 무슨 글이나 그런 글은 좋은 글이다. - 이태준 <문장강화> 中
이상의 <권태>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이태준 작가가 <문장강화>라는 책에서 쓴 글이다. <문장강화>라는 책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라는 주제를 내결고 거기에 관해 진지하게 강론한 책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책이다. 그러나 책 리뷰 등을 읽어보면 칭찬이 가득하고 나도 읽어보려 곁에 두고 있는 책 중 하나. Anyway.. 요즘 나는 '유머'가 사라졌다고 느낀다. 우습지만 슬프고 슬프지만 우습게 표현하는 멋스러움 같은 거.. 정말 그런 것이 있다면 이태준님의 말처럼 얼른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글을 잘쓰고 싶다는 욕구는 가져본 적이 없지만 인상에 남고 기억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있다. 결국 그게 그 소리인것 같지만... 그러나 유머가 점점 사라져 가니 큰 일이다. 내 희망이 또 풀죽어 버린다. 그럼 안되지. 글에도 힘을 실어보자. 문장강화 곁에 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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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 감수성을 자극하는 만화가 참 많구나.. 아.. 파페포포 메모리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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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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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하지 않은 일들 내가 당신의 새 차를 몰고 나가 망가뜨린 날을 기억하나요?
난 당신이 날 때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비가 올 거라고 말했는데도 내가 억지로 해변에 끌고가 비를 맞던 때를 기억하나요?
난 당신이 "비가 올 거라고 했잖아!"하고 욕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내가 당신을 질투나게 하려고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당신이 화가 났던 때를 기억하나요?
난 당신이 떠나리라 생각했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내가 오렌지 주스를 당신 차의 시트에 엎질렀던 때를 기억하나요?
난 당신이 내게 소릴 지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내가 깜박 잊고 당신에게 그 댄스 파티가 정식 무도회라는 걸 말해 주지 않아서 당신이 작업복 차림으로 나타났던 때를 기억하나요?
난 당신이 내게 절교를 선언할 줄 알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래요, 내 생각과는 달리 당신이 하지 않은 일이 참 많았어요. 당신은 나에 대해 인내했고, 나를 사랑했으며 보호해 주었어요. 당신이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올 때 당신에게 사과하는 뜻으로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이 참 많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 작자 미상, 레오 버스카글리아 제공, belle이 류시화의 시집으로 부터 다시 인용.
슬픈 글이지만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_-;; 이젠 나도 인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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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주 오래된 옛날 이야기책을 펼쳤다.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지역에서 발굴된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인데 연대기적으론 성서보다도 훨씬 앞선 이야기이지만, 수천년을 모래사막에 묻혀 있다가 19세기 말에 들어와 발굴되어 알려진 이야기이다.
(메소포타미아지역 탐사, 발굴에 관한 이야기는 시공디스커버리사의 <메소포타미아 - 사장된 설형문자의 비밀>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간략하나마 고대문자를 해독하는 데 얽힌 소설같은 이야기들, 발굴작업에 대한 기록, 그리고  칼라 사진들로 가득하다)

길가메쉬의 모험에 관한 이야기는 (현재 알려진 수준에서) 이것이 문자로 기록된 최고(最古)의 이야기라는 점뿐만 아니라 이 옛날 이야기가 품고 있는 내용 때문에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것과 뭐가 다르냐 싶지만 수십년에 걸친 설형문자 해독 에피소드와 길가메쉬에서 대홍수 이야기를 읽어냈다는 흥분으로 가득한 문헌등을 접하면 보면 그냥 단순한 이야기만은 아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알게 되면 좋아하게 된다는.. -_-;;)

나는 길가메쉬 이야기를 좋아한다.
길가메쉬가 엔키두와 벌인 싸움이나 우정 이야기도 좋지만 후반부에 영생의 비밀을 알기 위해 우트나피슈팀이라는 현인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특히나 좋아한다. 우트나피슈팀을 만나기 위한 여정에 있었던 일들을 읽어 나가는 것도 좋고 우투나피슈팀이 신으로부터 선택받아 대홍수를 이겨낸 이야기도 좋아하고 마침내 영생의 불로초를 구하게  이야기도 좋아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불로초를 구한 길가메쉬가 사람들과 고루 나누어 먹기 위해 돌아오는 여정에서 볼노초를 물가에 놓고 몸을 씻는 도중에 갑자기 나타난 뱀 한마리가 불로초를 냉큼 먹어 버리는 장면에 다다르면 한없이 허무해 지는 것이다. 길가메쉬는 뱀에게 불로초를 빼앗기고는 털썩 주저앉아 한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마침내 벌떡 일어나서는 자신이 떠나왔던 도시로 돌아간다.

뭐..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마지막 부분, 길가메쉬가 허무함에 울다가 마침내 운명을 인정하고는 벌떡 일어나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가장 좋다. 길가메쉬가 싸움 잘하고 용감해서 영웅이라기 보다는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용기를 내어 다시 살아가기 때문에 영웅이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성서나 고대 신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득한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 신에 대한 생각까지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훌쩍 수천년을 흘렀지만 사람은 항상 제자리라는 느낌, 결국 스스로 깨우쳐 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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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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