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즉 원래 내가 했어야 할 일인 실험과 관련된 근본 문제들을 다루지 않았다. 시험에서 빈은 Fabry-Perot 간섭계의 분해능에 관해서 물었다. 그것을 나는 전혀 공부한 적이 없었다. 물론 시험중에 나는 그것을 풀려는 시도는 했다. 그렇지만 짧은 시간 안에 성공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전혀 흥미를 갖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는 화가 났고, 현미경의 배율(분해능)에 관해서 물었다. 내가 그것을 모르자 그는 망원경의 배율에 대해서 물었다. 나는 그것도 역시 몰랐다. 그러자 그는 납 축전지의 작용방식에 대해서 물었고, 나는 그것도 마찬가지로 몰랐다. 나는 그가 나를 시험에서 떨어뜨리려고 했는지는 확실히 모른다. 아마 그 다음에는 좀머펠트와 그 사이에 격렬한 논란이 벌어졌을 것이다.

- 하이젠베르크, 토마스 쿤과의 인터뷰 중에서

위 이야기는 하이젠베르크가 박사학위 시험 중에 격었던 일을 회상한 것이다. 그 다음 이야기는 짐작하겠지만, 빈 교수는 하이젠베르크에게 '지독한 무지' 판정을 내렸고 지도교수인 좀머펠트가 '한 번 나타나는 천재'라고 주장함으로써 간신히 겨우 합격 했다는 스토리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는 좀머펠트가 2년 전 파울리의 구두 시험에서도 그를 '한 번 나타나는 천재'라고 했다는 것이지만..)

암튼.. <하이젠베르크>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전기문의 하나다. 대학 1학년 때 어찌나 재밌게 읽었던지 다시 읽고 싶은 귀절을 찾아 펼치는데 몇 초 걸리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이만큼 지나버리고 좋아하는 귀절이 생각나 다시 읽어 보려고 펼쳤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엉뚱한 내용만 위에 인용하고 말았다. 시키는 실험 안하고 파울리와 딴짓(?) 하다가 시간 다 까먹고 절대음감으로 간신히 실험 결과를 써냈다 어쩌구 하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천재도 아니고 따라서 천재라고 우겨줄 지도교수도 없으니 Fabry-Perot 간섭계의 분해능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거고, 절대음감도 없으니 해야할 실험이 있으면 착실히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다. 실험실에 쳐박혀 있다가 우연찮게 일 저지른(?) 사람도 많으니까..
문제는 어디서 무얼 하건 간에 어떻게(!) 라는 것이 중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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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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