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자기의 마음을 바꾸는 여자는 변덕쟁이, 혹은 머리가 산만한 사람이라고 불리워 진다.
남에게 쉽게 영향을 받아 자기의 의견을 자주 바꾸는 남자 역시 우유부단한 사람, 혹은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이중인격자라거나 심지어는 정신병자라고까지 불리기도 한다. 반면에, 강직한 일관성은 심리적인 그리고 지성적인 강점으로 간주된다. 일관성이야말로 논리, 이성, 안전성 그리고 정직성의 핵심으로 인정받고 있다.
(로버트 치알디니 저 "설득의 심리학" p.95)
(저자는 위의 일반적인 통념을 언급한 후 그 올가미에 빠져 허덕일 여지가 있다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일관적으로 행동하고 말하면 편하긴 하다. 다만 그로 인한 오류가 없을 경우에..
어제 세미코가 한 말을 예로 들어보자.
회사 사람들 앞에선 남편 이야기를 할 때 칭찬보다는 흉(?)을 보게 된다고 했다. 문제는 그렇게 말해 놓고 그 날 저녁 회사 앞에서 기다리는 남편 차를 보고는 '먼저 갈께요' 하고 달려갔다고.. ^^
앞 이야기와 뒷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쑥스러웠다고 했는데 이런 경우가 일종의 일관성의 함정에 빠진 예가 된다.
(To semiko : 이거 사생활 침해 아니쥐? 그러나 난 알쥐. 흉이 흉이 아니란 것을..^^)
나 역시 오늘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보자.
옆 실 선배가 광섬유 36조각의 무슨 무슨 특성을 측정해놓고는 계산법을 물어왔다.
각 광섬유 조각을 다 이으면 1,000 km 길이가 되는데 한번에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각 조각을 측정한 것이었다.
그 선배의 계산방법을 보고 나는 통계적 분포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 방법이 일반적이지 않아 틀렸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내 식으로 하면 값이 너무 크게 나와서 포설된 그 광섬유가 테스트베드로 사용할 수 없는 아주 불량한 놈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내 주장을 믿고 싶지 않았던 선배는 다른 사람을 불러왔고, 결과적으로 내가 틀리고 그 선배가 옳은 것으로 판별되었다.
즉 일반적이 아니라는 내 주장이 오히려 아주 재수없는 상황(확률로 따지면 무지 작은 경우)에만 적용되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서로의 일관성을 주장하기 위해 그 선배는 다른 사람을 부르게 되었고, 나는 나대로 내 일관성을 주장하기 위해 '그렇게 큰 값이 나올 소지가 있다, 확률은 적지만'이라고 수습하기에 이르렀다.
암튼 그렇게 둘러내긴 했지만 내가 얼마나 창피했을지 생각해 보라.
어긋나버린 일관성에 대한 예는 도처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그 사실 때문에 스스로 난처해지는 상황 역시.
그러나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이러한 일관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조금 더 신중하고 세밀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싶어서가 아니다.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물론 충분히 신중히 생각하고 말해야 하겠지만,
대부분 우리 살아가는 상황에선 늘상 함정에 빠지고 오류를 범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또한 그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다소의 뻔뻔함이 정신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
* 물론 늘 일관됨을 유지하는 사람이 부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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