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극장에서 용가리를 보던 날, 전날 잠을 잘 못 잔 것도 이유겠지만 결국 지루한 내용이 문제였던 것 같고 결과적으로 초반 약20분을 보다가 잠을 잤다. 그래서 보았지만 기억엔 전혀 없는 영화가 용가리이고 기억에 없기 때문에 영화감상평도 못하는 영화가 용가리이다.
디-워는 해리포터와 불사조의 기사단을 보러 갔을 때 예고편을 보고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빌딩을 감고 솟구쳐 오르는 이무기가 어찌나 멋지던지! 그리고 동시에 용가리를 보러 가게 된 이유가 떠올랐다. 용가리도 눈동자 움직이는 CG에 반해서 보러간 것 아니었던가.. 설마 또 잠들어버리는 사태가 재연될까 하는 걱정도 일부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손해 볼 것도 없으므로 고고싱. 러닝 타임 약 100분.
디-워에서 느낀 재미는 트랜스포머에서 느낀 재미와 거의 비슷하다. 트랜스포머 보면서 '우와 재밌다' 이런 느낌 못 가졌지만 볼 만했고 디-워도 마찬가지였다.
스토리텔링, 개연성을 가지고 말한다면 디-워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어색하다. 트랜스포머도 황당한 구석이 있지만 디-워는 이보다 심했다.
CG는 어땠을까? 촌스럽거나 화면에 안어울리게 어색하지도 않았고 훌륭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들, 빌딩을 감아 올라가는 나쁜 이무기 씬, 추격장면의 스피드와 긴장감 표현, 그리고 마지막 착한 이무기가 마침내 여의주를 물고 용이 되어 승천하는 씬. 모티브 자체가 이무기이기 때문에 다른 외산 영화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독특한 장면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아한다. 그렇지만 전투씬에 등장하는 갑옷군단과 괴물들. 스타워즈를 보는 듯 했다. 정말 비슷하다. 누군 반지의 제왕이랑 비슷하다고 했는데 아마도 두 영화를 다 참조했을 터이고 어딘가 비슷한 족적을 남겼겠지..
영화 흐름은 빠르고 지루하지도 않다.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야기가 따지고 들면 한없이 황당한 부분들이 많다라는 거.
여기까지가 나의 영화감상일기이다. 그런데 포털에 자꾸 디-워 논쟁이 노출되기에 그걸 읽다가 확 빠져버리고 말았다. 디-워 러닝타임만큼의 시간을 들여 지난 8월 9일 밤에 MBC에서 방송한 100분 토론 "“디-워”(D-WAR), 과연 한국영화의 희망인가"를 다시보기 한 것이다.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것이 자연스럽게 디-워와 주변 사건들에 대해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전에 있었던 100분 토론 모티브가 된 일련의 평론가와 네티즌들의 갈등도 알게 되었고 100분 토론 후폭풍에 대한 이야기도 알게되었다. 영화와 사회현상이 믹싱되어 지상파 토론까지 벌어지니 영화 이외의 재미를 얻게 되고 흥미진진한 상황이다. (지금은 좀 누그러진 듯도 하지만..)
100분 토론을 보면 4명의 패널리스트들의 이야기들에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된다. 토론에서 논쟁하고자 하는 요점도 매우 명확하다. 일부 패널리스트가 요점을 조금씩 벗어났고 엉뚱한 말을 해서 맘에 안들었긴 했지만 말이다.
디-워가 개봉하기 전, 심감독은 여러 지상파 오락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와 자연스럽게 영화를 홍보했다. 나는 심형래 감독이 무픕팍 도사에 나온 건 못봤고, 상상플러스에 나온 건 봤다. 상상플러스에서 심형래 감독 자신의 입장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요점은 진중권식 표현을 빌리자면 애국코드와 인생극장 코드였던 듯 하다. 그러나 그러한 장면들이 어색하거나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특별히 마케팅이라는 느낌도 없었던 듯하다.(기억도 잘 안나고, 보통 영화 개봉전 연예인들이 오락프로에 게스트로 종종 나와 한두마디씩 영화에 관해 말을 하니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심감독의 이런 홍보전략(?)은 큰 효과를 얻었다. 많은 네티즌들이 그를 응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일부 평론가가 개인 블로그와 언론에 기고한 글이 문제가 되었다. 왜냐면 네티즌들이 반맹목적으로 응원하고 있는 영화를 일부 평론가가 나쁘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 개봉전이었으므로 영화 자체를 평론한 것이 아니고 네티즌들의 과열된 응원과 충무로를 비난하는 사회현상의 기이성에 대해 비판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어쨌거나 기분이 나빴을 네티즌들,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보통 이런 이슈거리에는 이런 식의 대응이 계속 있어왔고 이상할 것도 없으며 무시하면 그만인 부분도 있는데 이번에는 심했다 싶었는지 생방송으로 토론까지 열려 버린 것이다. 덕분에 영화 디-워 플러스 알파의 재미를 느끼는 중이라 고맙긴 하다.
한편으론 사람들은 과연 디-워를 어떤 기대감으로 볼까 궁금하다. 내 경우 확실히 디-워를 심형래 감독의 유명세나 역경과 성취라는 배경에 취해 보는 것도 아니고 CG기술이 국산이라서 애국심에 기초한 자긍심에 보겠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챙겨보겠다는 심리에 기반한 것이다. 그리고 극장가에 딱히 보고싶은 영화도 없고, 여름 겨냥 공포영화는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이유는 일반화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공포영화는 누구나 보기엔 역부족이고 혈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이미 개봉을 마친 상태라 지금 극장가에 없다는 것. 결국 개봉시기를 잘 잡은 것, 적절한 마케팅, 이슈들로 인한 유명세 등이 개봉 첫주에 관객수 400만을 훌쩍 넘게 하는 것이리라고 생각할 수 밖에.
나름 분석을 하자면 이번 논쟁사태는 심형래감독이 주는 감성적인 효과들과 이에 대한 적극 찬동 그리고 반대의견이 참여와 익명성의 인터넷이라는 창구를 통해 표현되면서 효과가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100분 토론에서 한 패널리스트로 이런 관점에서 이 사태를 해석했는데 공감한다. 다만 요점을 벗어난 개인비하로까지 글을 써대는 유치한 행태는 지양되어야 옳다.
그러나 그것을 보면서 즐기는 사람도 결국 우리 자신이고 부추기는 것도 우리 자신이다. 모두가 똑같이 성숙해지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고 나는 비관론자처럼 모든 사람이 결코 동시에 성숙할 수는 없으며 결국 이런 일은 두고 두고 반복되리라는 것에 한 표를 던진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몹시 궁금해 하면서 글을 마친다.
(영화와 상관없이 인생과 세상살이에 대한 글로 결론이 나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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