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라는 책을 구입한 날짜를 보니 2001년 9월 20일이다. 그러니까 1년하고도 2달이나 지나서 읽고 있는 셈이다. 그 당시 이 책을 몇 페이지도 못 넘기고 접어버렸던 이유는 너무나 난해하고 대체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힘들게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보니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니다.
그래서 왜 1년 전에는 난해하게만 느껴졌을까 생각해 봤는데 한가지 이유는 목차 때문이다. 목차에 사람 이름이 잔뜩 들어가 있는데 불어 이름인데다가 하나같이 생전 처음 듣는 이름들이어서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둘째는 인내심 부족이다. 서문부터 차근히 읽어나갔어야 하는데 덮어놓고 부록의 논문부터 읽었다. 그러니 두 문장도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렸을 수 밖에..
어쨌거나 지금은 키득키득거리면서 재미있게 읽고 있으니 1년 전의 바보스러움을 너그럽게 용서하련다. ^^;
저자 앨런 소칼은 뉴욕대학 물리학과 교수다. 그리고 그가 꼬집는 인물들은 소위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문사회학자들 중 몇몇이다. 그리고 앨런 소칼의 글 속에서 실컷 망신당하는 그 학자들의 공통점은 아무렇게나 수학과 물리학을 가져다 썼다는 점이다. 앨런 소칼이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었지만 참지 못하고 칼을 빼어든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금세기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높다는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그의 저서와 강연에서 위상수학을 가져다 쓰는데 문제는 라캉이 위상수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심지어 라캉은 무리수(irrational number)와 허수(imaginary number)도 구분을 못하고 있는데 그걸 그의 정신분석학 저서에 가져다 쓴다. 따라서 그의 저서들은 도무지 앞뒤가 안맞고 말이 안된다.
그리고 앨런 소칼은 그런 예가 아주 심한 부분들을 일부 발췌해서 써놓고 있다. 그렇담 앨런 소칼이 왜 이런 책을 썼는가를 이해해야 하는데 사실 그 자체가 코미디다. 그는 라캉식의 말장난이 유행처럼(Fashionable nonsense) 번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Social Text라는 논문지에 논문을 한 편 낸다. (Social Text는 미국에서 발행되는 인지도 높은 인문과학 저널이라고 함) 물론 그 논문은 그럴듯한 어휘들로 짜집기 되었을 뿐 그 알맹이는 전무한, 다시 말해 말도 안되고 모순으로 가득찬 황당무계한 글이었다. 그리고 그 논문이 과연 채택되어 실릴지 여부를 보겠다는 '장난'이었는데 앨런 소칼 표현대로 Social Text는 자기 발등을 찍는 행동을 하고 만다. 소칼의 논문이 특집으로 실려 버린 것이다.
결국 앨런 소칼은 자신의 장난질을 고백하게 되고 그들 세계는 발칵 뒤집어 지고 만다. 소칼에게 돌아오는 것은 '격려'도 있었지만 엄청난 비난, 비난, 비난. 그리고 비난자들은 요구한다. 대체 뭣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낱낱히 밝혀라라는 요구도 있었던지 날아오는 비난에 일일이 답할 수도 없게 되어 책을 한권 낸다.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Fashionable nonsense를 비난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에 대한 책을..
사실.. 무리수와 허수를 구분 못하는 정신분석학자가 인간의 발기 기관이 √-1 이라고 떠들어 대건 말건 신경을 끄고 살아도 사는데 지장은 없을 것이다. 뭐, 알면서도 모른척 한다기 보다는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정신분석학 저서들을 읽을 기회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더 옳겠지만..
그렇지만 나같은 인간도.. '엔트로피'나 '슈뢰딩거의 고양이'나 '상대성이론' 같은 단어들이 심히 비약적으로 이상하게 쓰이는 걸 볼 때는 어쩐지 우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소칼의 말을 빌리자면 개념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럴듯 하게 보이는 단어들을 가져다 쓰는 것은 잘난 척 하려는 태도밖에 안되는 것이다.
소칼이 너무나 신랄하게 인문사회학자들을 씹어 놓은 탓에 머쓱한 기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괜히 나도 과학자랑 한편인척..-_-;;) 소칼의 이 책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갖는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말 뭐하러 어렵게 하나. 진짜로 잘 아는 사람은 알아듣기 쉽게 말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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