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나선
J.D.왓슨 지음, 하두봉 옮김/전파과학사/초판 1973년(개정7쇄 2000년)
James D. Watson의 이중나선은 그가 DNA 구조를 발견하게되기까지의 경위를 서술한 책이다. 나는 왓슨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이 책이 재미있다고 누가 추천해줄 무렵만 해도 정말 그럴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손에 쥐고 읽어보고 있노라면 계속해서 키득키득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손에 잡을 듯이 선명하고 공감이 가서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 자신과 주변인물에 대해 기술한 이야기들은 너무 솔직하고 인간적이어서 그가 받은 노벨상의 권위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적당히 낙관적이고 경쟁심 있고 머리 좋은 한 박사 후 과정 학생의 이야기는 모든 과학자들에게 연구의 내용만 다를 뿐 일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하이젠베르크>에서 하이젠베르크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접했던 것처럼 왓슨 또한 자신과 주변의 과학자들 크릭, 윌킨스, 프랭클린, 폴링과의 에피소드들을 늘어 놓는다. 사실 이것은 재미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그가 맨 처음부터 DNA 구조를 발견하겠다고 작정하고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닐 뿐더러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상황과 주변의 분위기 그리고 크릭과 같은 인물을 만나게 된 인연 등등이 조합해서 과학사에 하나의 업적이 만들어 졌다고 할 밖에 없다. (하지만 DNA에 대한 관심은 대학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다. ^^)
왓슨과 공동으로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한 크릭은 굳이 비유하자면 하이젠베르크가 만난 파울리와 같다. 괴팍한 성격으로 튀는 면모나 그 분야에서 이미 몇 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어서 하이젠베르크나 왓슨에게 실질적인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라는 측면에서. 프랭클린은 영국의 여성 과학자로 왓슨의 포닥시절에 연구원으로 와 있었던 인물로 그에게 자극제가 되었던 사람이다. 그녀에 대해 묘사한 몇 줄을 읽어 보면 프랭클린은 전형적인 여자 연구원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남자들은 자기 보다 똑똑한 여자들에게 괜한 경쟁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녀들로부터 머저리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밤새 공부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로즈 프랭클린의 발표를 알아 듣기 위해 왓슨은 결정학을 공부했으며 이것은 뒷날 모형론으로 DNA를 밝혀내기 전까지 하나의 자극제가 되었다.
왓슨의 이중나선과 같은 류의 책은 직접 읽어 보지 않고는 그 '키득키득'을 느낄 수가 없다. 대학시절, 화학이나 물리학같은 까다롭게만 보이는 과목들을 이수하지 않고 넘어가는 방법들에 골몰했던 왓슨이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유기화학을 공부하라고 강요(?)당하고 있었는데 그가 벤젠을 분젠버너의 불꽃으로 데우는 것을 본 다음부터는 폭발사고를 일으키는 것 보다 엉터리박사로 내보내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겼는지 교수들이 유기화학 공부를 시키지 않더라는 식의 이야기는 황당하면서도 그럴듯하다. 실제로 랩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저런 식의 사고를 칠까봐 일을 안주는 경우는 허다한 것이다. 그렇지만 왓슨은 결국 나중에 화학을 공부하게 되고 만다. 그것도 박사학위 마치고 포닥으로 코펜하겐까지 가서 말이다. 골치 아플 것 같은 과목은 미리미리 섭렵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나 할까. 나이 먹어 머리 아프지 말고.. ^^;
이 책은 이런 식의 단편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어떤 '발견'에는 그런 에피소드들이 빠질 리가 없다. 그래서 책이 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 중에서 왓슨이 DNA가 나선구조를 갖는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한 장면을 인용하려고 한다. 발견의 기쁨과 유머로 가득한 한 장면이다.
J.D.왓슨 지음, 하두봉 옮김/전파과학사/초판 1973년(개정7쇄 2000년)
나로서는 이제 일도 대충 끝났고, 또 빠리에 가면 에프러씨와 르보프에게 이중나선의 자랑도 실컷 할 수 있는 이 여행을 미룰 이유는 도무지 없었으나, 크릭은 이 중대한 시기에 빠리에 가서 일주일이나 있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화를 내고 있었다. 크릭은 나더러 좀더 착실해져라 하고 여행을 만류했지만 나는 여행이라고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기분이었다. 더구나 켄드루가 샤르가프로부터 그에게 온 편지를 크릭과 나에게 보여준 뒤는 더했다. 그 편지의 끝에는 "당신 연구실에 있는 그 촌뜨기들이 해냈다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지 가르쳐 주시오."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 J.D. 왓슨
그가 그 자신과 주변인물에 대해 기술한 이야기들은 너무 솔직하고 인간적이어서 그가 받은 노벨상의 권위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적당히 낙관적이고 경쟁심 있고 머리 좋은 한 박사 후 과정 학생의 이야기는 모든 과학자들에게 연구의 내용만 다를 뿐 일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하이젠베르크>에서 하이젠베르크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접했던 것처럼 왓슨 또한 자신과 주변의 과학자들 크릭, 윌킨스, 프랭클린, 폴링과의 에피소드들을 늘어 놓는다. 사실 이것은 재미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그가 맨 처음부터 DNA 구조를 발견하겠다고 작정하고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닐 뿐더러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상황과 주변의 분위기 그리고 크릭과 같은 인물을 만나게 된 인연 등등이 조합해서 과학사에 하나의 업적이 만들어 졌다고 할 밖에 없다. (하지만 DNA에 대한 관심은 대학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다. ^^)
왓슨과 공동으로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한 크릭은 굳이 비유하자면 하이젠베르크가 만난 파울리와 같다. 괴팍한 성격으로 튀는 면모나 그 분야에서 이미 몇 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어서 하이젠베르크나 왓슨에게 실질적인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라는 측면에서. 프랭클린은 영국의 여성 과학자로 왓슨의 포닥시절에 연구원으로 와 있었던 인물로 그에게 자극제가 되었던 사람이다. 그녀에 대해 묘사한 몇 줄을 읽어 보면 프랭클린은 전형적인 여자 연구원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남자들은 자기 보다 똑똑한 여자들에게 괜한 경쟁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녀들로부터 머저리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밤새 공부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로즈 프랭클린의 발표를 알아 듣기 위해 왓슨은 결정학을 공부했으며 이것은 뒷날 모형론으로 DNA를 밝혀내기 전까지 하나의 자극제가 되었다.
이 책은 이런 식의 단편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어떤 '발견'에는 그런 에피소드들이 빠질 리가 없다. 그래서 책이 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 중에서 왓슨이 DNA가 나선구조를 갖는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한 장면을 인용하려고 한다. 발견의 기쁨과 유머로 가득한 한 장면이다.
윌킨즈는 TMV(주)가 나선형입을 입증하는 X선 사진을 내가 그리 쉽게 찍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이 예기치 않은 성공을 거둔 것은 그 무렵 캐븐디쉬에 갓 설치된 강력한 회전음극X선관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장치를 씀으로써 그 전보다 20배나 더 빨리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불과 1주일 안에 나의 TMV X선 사진은 두배로 늘어났다.
그 무렵 캐븐디쉬연구소는 밤 10시에 문을 닫는 것이 습관이었다. 연구소 정문 바로 옆에 있는 단층집에 수위가 살고 있었지만 이 시간을 지나서 수위에게 문열어 달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찍이 러더퍼드가 여름밤에는 정구나 치는 것이 낫다면서 학생들이 밤에 실험하는 것을 말렸던 것이 그대로 관습이 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의 사후 15년이 지난 그 때까지도 정문 열쇠는 하나밖에 없었고, 그마나 휴 학슬리가 독차지하고 있었다. 학슬리는 그의 실험재료인 근섬유는 살아있는 생물이니까 물리학자들이 만든 규칙에는 순종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필요할 때는 그 열쇠를 빌려주기도 했고 또 계단을 내려와 육중한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한여름인 7월의 어느날 밤 늦게 내가 X선관을 닫고 새 TMV시료의 사진을 현상하러 연구소에 갔을 때 학슬리는 없었다. 시료는 25도만큼 기울여두었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나선을 나타내는 반사점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음화를 불빛에 비쳐본 순간 나는 감격에 몸을 떨었다. 거기에는 틀림없는 나선의 표시가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루리야와 델브릭에게 내가 케임브리지에 오기를 잘했다고 납득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한밤중인데도 불구하는 나는 하숙에 돌아갈 생각도 없이 행복감에 가득찬 기분으로 연구소 뒤뜰을 한시간 이상이나 걸어다녔다.
이튿날 아침 나는 나선이라는 판정을 확인받으려고 초조하게 크릭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릭이 불과 10초도 안걸려 문제의 반사점을 확인해주었을 때 아직도 한가닥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의구심도 말끔히 가셨다. 나는 반 장난 기분으로 크릭을 놀려주고 싶어서 이 X선 사진 자체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TMV에서도 일반 결정에서 보는 바와 같은 성장점이 있다는 내 통찰력이 아니냐라고 말하였다. 나의 이러한 경박한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크릭은 그 따위 무비판적인 목적론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쏘아부쳤다. 크릭은 언제나 그가 생각하는 바는 꾸밈없이 그대로 말하는 성품이었고, 나도 역시 그러하리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케임브리지에서는 누군가가 곧이들어주겠지 하고 바라면서 엉뚱한 말을 해도 더러는 먹혀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크릭에게만은 이런 수가 통하지 않았다.
(주)TMV tobacco mosaic virus, 담베 모제익 바이러스. TMV의 핵심적인 성분은 핵산이므로 DNA에 대한 관심을 계속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남들에게는 내가 아직도 DNA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감추기에는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물론 TMV의 핵산은 DNA가 아니고 리보핵산(ribonucleic acid, RNA)이다. 그러나 윌킨즈는 RNA에는 말썽을 피우지 않을 것이므로 차라리 이쪽이 마음 편하다고 할 수 있었다. RNA를 해결하면 그것은 DNA해결의 결정적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02.10.27)
'독서노트 > 독서 &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Schopenhauer(쇼펜하우어) (2) | 2002.11.17 |
---|---|
'마음 다스리는 글'을 암송하며 (0) | 2002.11.04 |
思考 事故 (0) | 2002.10.27 |
쉬운건 쉽고 어려운건 어렵다 (0) | 2002.10.05 |
세계종교사입문 (0) | 2002.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