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이 지나갔다. 지난 일주일간 점심시간에는 빠지지 않고 로또 이야기가 등장했으니 월드컵 기간 중 축구 이야기에 버금갈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로또 복권을 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데 내가 아는 한 두 종류의 로또복권 거부자들이 있다. 하나는 '앞으로 다가올 행운을 빼앗길까봐'이며 또 하나는 '이미 행운을 누릴만큼 누렸기 때문'이다.
로또복권 1등 당첨은 그 당첨의 어려움으로 보나 그 액수로 보나 확실히 운 또는 운명이다. 그리고 또한 확률로 이야기하건데 그만한 행운은 다시 오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돈이 아닌 다른 행운과 행복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로또의 행운이 자신의 다른 행복을 가로채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이미 행운을 누렸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로또의 행운이 자신에게 돌아올 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때문일까? 하루하루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복권당첨액을 보면서 당첨되면 곧 불행해진다는 공식을 믿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또 그냥 지나치기에는 역시나 물욕이 있는지라(푸핫) 나는 나이 많으신 부모님께나 로또 한번 하세요 하고 권해드렸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는 이런 식의 행운을 원치 않는 것이 확실해졌던 것이다. (뭘 믿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앞으로도 나는 로또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엄마가 재미로 다섯게임 만원내고 로또 하시는 건 권장하려고 한다. 1등은 원하지도 않는다. 적은 액수라도 당첨의 기쁨과 행운의 작용을 엄마가 느끼고 즐거워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다음 글은.. 며칠전 신문에 난 내용인데 생각하는 바가 있어 옮겨본다. 행운과 불운이 적절히 교차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인 것 같다. ^^
사모스의 참주(僭主) 폴류크라테스는 억세게 재수좋은 사나이였다. 작전마다 성공을 거두었고 도처에서 약탈을 감행하였다. 많은 섬과 육지를 점령했고 행운은 계속되었다. 그의 계속적인 행운에 불길한 예감을 갖게된 친구이자 이집트의 왕 아마시스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폴류크라테스에게 보낸다. “동맹 관계에 있는 친구의 행운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신(神)들이 성공을 시샘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귀하의 과도한 행운을 기뻐만 할 수 없습니다.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내 자신의 소망으로 말하면, 만사형통하기 보다는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행운과 불운을 번갈아 겪으며 한평생 지내고 싶습니다. 매사에 행운만을 만났다가 결국엔 비참한 종말을 겪지 않은 사례를 들은 바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계속적인 성공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결행하기를 충고합니다. 귀하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을 잃으면 아주 비통해 할 것이 무엇인가를 잘 생각해내어 그것을 버리십시요. 아무도 다시 볼 수 없도록 내버리세요. 그 뒤에도 계속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일이 없으면 제가 마련한 방법을 되풀이 하십시요.” 그럴싸한 충고라고 여긴 폴류크라테스는 손에 낀 인장달린 반지(signet ring)를 생각해내고 부하들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모두 보는 가운데서 반지를 물속으로 던졌다. 그리고 비통해 하였다. 대엿새후 한 어부가 유난히 큰 대어를 잡아 그냥 팔아넘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폴류크라테스에게 바쳤고 숙수들은 고기 뱃속에서 인장반지를 발견했다. 그들은 몹시 기뻐하며 반지를 폴류크라테스에게 갖다 바쳤고 이를 신의 뜻이라고 여긴 그는 자초지종을 적어 아마시스에게 보냈다. 편지를 본 아마시스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운명으로부터 구해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일부러 버린 것을 다시 찾게될 정도로 행운인 사람이 언젠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즉각 사자를 사모스로 파견하여 동맹 관계의 파기를 알렸다. 그후 폴류크라테스는 사르디스 총독인 페르샤인 오로이레스에게 죽음을 당하는데 헤로도투스는 그것이 “너무 끔찍해서 언급하지 않는다”고 적어놓고 있다. 아마시스의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헤로도투스의 ‘역사’ 제 3권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모두 9권으로 되어있는 이 책은 이렇게 흥미진진한 얘기로 가득 차있다. 이런 얘기를 통해 우리는 고대 그리스인의 운명관을 엿볼 수 있다. 과도한 행운의 연속과 이에 따른 오만이 신의 노여움을 산다는 생각은 그리스 비극에서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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