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일찍 요란하게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나가봤더니 정장을 차려입은 어떤 여인이 화가 잔뜩 나서 빨리 차를 빼라고 난리다. 내가 그만 실수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 놓고 가로 주차를 한 것이다. 그래서 지체하지 않고 차 키를 들고 나가 "미안합니다" 사과를 하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우리집은 15층.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것도 30초는 넘게 걸리는데 그 열받고 성격 급한 여인에게는 그 시간이 10분 처럼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보아하니 정말 열이 받을 데로 받아서 한번 나를 휙 쳐다보더니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미 사과한 내가 뭐라 또 할 말도 없고 뻘쭘하게 엘리베이터에 서있을 밖에..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짜증스럽고 화가 난 목소리 톤 그대로 "저 급하니까 차 좀 빨리 빼주세요" 하더니 뛰쳐 나간다. 미안한데 함께 뛰어가서 차를 빼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그 여인의 말투와 행동과 표정이 은근히 화나게 하는 데다가 속으로 뛰어가나 걸어가나 30초 밖에 차이 안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갈등하고 있는데 여인이 저만치 뛰어가며 또 소리를 지른다. "급하니까 빨리 빼줘욧!!" 음.. 맘에 안든다. '급한건 너지 내가 아니거든' 하는 얄미운 생각이 들면서도 제법 종종걸음으로 가고 있는데 이미 자기 차에 도착한 그 여인 또 다시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이번엔 반말이다. 음.. 이걸 참아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결국 나도 대뜸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지금 가고 있잖아!" 이런 내 말에 예상대로 그 여인은 움찔하면서도 열이 더 받았다. 그런데 이번엔 다시 높임말이다. "뭐라고요?" 그 후에도 잘 기억은 안나는데 암튼 뭐라뭐라 시끄럽게 항의하는 말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내가 달리 할 말이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잖아요!" 라고 되받아 줬다. 차에 시동을 걸면서 말이다. 그 여인은 성질을 못 참고 여전히 소리를 지른다. "당신 때문에 지금 20분이나 늦었다고요! 당신 같으면 이럴 때 열 안받겠어요?" 그래서 내가 뭐라고 대꾸했냐 하면..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나는 안그렇거든요." 했다. 여자는 기가 막혔는지 이젠 아무 말도 안하고 자기 차로 돌아가 내 차를 받을 듯 몰고 나온다. 순간 저 여자가 정말 들이받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인은 내 차를 들이받을 만큼 이성을 잃지는 않았고 다행히 내 옆을 닿을 듯 스치며 차를 몰고 가버렸다. 가는 내내 내 욕을 하느라 심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나는 생각했다. 원래 내가 이렇게 뻔뻔했나? 스스로 놀랐지만 한편으론 내 내면이 잘 드러나는 사건은 아닐런지? 그 여자가 비록 화는 났지만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실수로 인정하고 좀 더 polite하게 했더라면 확실히 나의 대응은 달랐을 것이다. 확실히 그녀에게 던진 내 말 그대로 같은 상황이 왔더라도 나는 그녀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보다는 상황 파악을 잘 하기 때문이다. 그 여인은 분을 못이겨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비했고 게다가 나한테도 당했으니 기분도 망가졌을 터. 지금도 다소 미안하긴 하지만 그런 이상한 성격은 빨리 버려주길 바란다. 물론 나는 향후 주차 실수를 안할거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