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팀에 서른일곱 노총각이 하나 있다. 이 아저씨는 별명이 의학박사인데 (실제로는 물리 전공한 이학박사지만..) 나는 여기에다 사주 관상에 능한 점장이 별명까지 붙혀주고 싶다.
얼마 전 커피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주제는 결혼이었다. 물론 나와 그 아저씨가 꺼낸 주제는 아니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노총각 노처녀가 있으니 재미삼아 툭 던진 주제였다. 그래서 서로 머리깍아 주자, 좋은 후배 없냐 하는 식의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다가 그 아저씨가 듀오에서 만났던 여자들 이야기부터 사주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아저씨도 어느 정도 사주를 풀 줄 아는 모양인데 자기가 진검승부하자며 연락하는 전문 사주도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냉큼 이렇게 말했다. "내 것도 좀 봐줘요.."
그래서 내 생년월시를 불러주고 만세력을 통해 월주를 뽑고 사주도인에게 전화를 했다. 위에서 진검승부라고 이름붙힌건 일종의 장난인데 이 노총각 아저씨가 종종 사주만 뽑아서 사주도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람 운명을 맞춰보시죠.. 하는데서 연유한 것이다. 대개 사주만 보고도 어느 정도 운명을 맞춘다고 하니 신기하기는 한데 암튼 여기서 중요한건 남들 운명이 아니라 내 운명이니까..
옆에서 둘이 전화하는 걸 들어보니 정말 내 신상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하고 사주만 불러주고 둘이 주거니 받거니 정말 진검승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사주의 여인이 결혼을 했겠습니까? 안했겠습니까?" 부터 묻지를 않나.. 내참. 옆에서 나는 궁금한 걸 알아내기 위해 계속 종알거린다. 언제 결혼하는지 물어봐요. 남편은 어떤 사람인지 물어봐요. 등등.
꽤 오랜 시간 통화를 했는데 그 노총각 아저씨를 통해 내가 듣게 된 것은 몇가지가 있지만 여기서 말할 순 없고..
한가지 궁금했던 걸 물었다. "(아저씨) 사주는 어떻대요? 언제 결혼한대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 자기 사주엔 결혼에 대한 부분이 희미하다고 한다. 처궁이 깨져 있어서 결혼하기가 힘든 편이라고.. 그러면서 나더러 결혼에 대해 초조해 하지 말라는 충고를 덧붙히는 것이었다.
초조함이라.. 문득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함이 밖으로 다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저 아저씨는 저렇게 덤덤하게 말하는데 난 이게 뭐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이것이 초조함 내지는 불안함이라고 뻔히 정의내리면서도 그것을 없애지 못하는 마음도 느낄 수 있었고 말이다. 아, 왜 나는 느긋해질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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