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테스트가 어찌 생겨났는가 하는 내용을 우연찮게 읽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Catherine Cox라는 학자가 역사상 유명한 남녀들을 상대로 IQ 테스트를 적용해 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대상들은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자서전이나 전기문 그리고 입수가능한 자료들에 근거한 간접적인 테스트였다. 영광스런(?) 1위를 차지한 사람이 다름아닌 John Stuart Mill (존 스튜어트 밀, 영국,1806-1873). 나에겐 고등학교 국민윤리 철학 부분에서 스쳐지나간게 전부인 인물이었다.
그렇담 어떻게 이 사람이 1등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하는 설명이 있다. 내용을 대충 요약하자면 3살 때에 그리스어로 이솝우화를 읽었으며, 7살에 기분 전환으로 플루타르크를 번역했고, 8세에는 라틴어를 동생들에게 가르쳤고, 11세에는 미분학, 12세에는 물리학 화학, 13세에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홉스에 이르는 고전논리학, 역사, 문학, 수학, 경제학 등을 배웠다는 것이다. 정식 학교 교육은 받은 적이 없고 아버지의 영향아래 엄격한 사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그의 아버지는 한가지 책을 읽고 나면 비슷한 주제를 다루되 관점이 다른 다른 저술을 읽게 하고 그 둘을 비교 논증까지 하게 시켰다. 비유하자면 과외로 공부해서 수능 논술고사를 검정고시로 치룬셈이다. ^^;

암튼.. 그런 연유로 John Stuart Mill 이란 이름이 머리에 들어있던 참인데 오늘 또 우연찮게 그의 연애담을 읽게 되었다. 여기 옮겨 본다.

밀이 정신적 위기에서 벗어날 무렵인 1832년의 어느 날, 25세의 그는 런던의 약종상 존 테일러의 초대를 받았다. 여기서 그는 테일러의 부인인 헬리오트를 알게 됐다. 그녀는 지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여성으로 밀의 이상형이었다. 그들은 곧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들의 친밀한 관계는 영국 상류 사회의 스캔들이 되었다. 테일러의 양해로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그들의 관계는 밀이 44세가 될 때까지, 그러니까 헬리오트의 남편인 테일러가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밀이 46세 되던 1851년, 주위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헬리오트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온 결혼이었지만 프랑스 여행 중에 얻은 감기와 폐렴으로 헬리오트가 갑작스레 죽게 됐다. 밀은 아내의 유해를 묻은 아비뇽 근처에 집을 마련해 그녀의 무덤을 평생 돌보는 열정적 사랑을 보여줬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유론>은 헬리오트와 함께 내용을 공유하며 함께 수정 검토한 두 사람의 합작품이라고 밝혔다. 헌사에서도 헬리오트에 대한 그의 존경과 뜨거운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여성의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로운 개성의 발현에 관한 자신의 사상 대부분이 헬리오트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밀이 IQ 1등이라는 것보다 이 연애담(?)에 더 놀라고 말았다(^^). 연인의 남편의 이해로 20년간 교제를 하고 결국 남편이 죽고 나서 결혼까지.. 밀은 개인 각각의 개성과 자유 자체를 존중하는 철저한 자유옹호론자였다고 한다.
우상화할 생각은 없지만, 아마도 밀은 타고난 지성뿐만 아니라 감성적으로도 탁월했을 거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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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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