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코드> 전작이라 덩달아 유명한 <천사와 악마>를 읽었다. 휴가라서 시간도 넉넉하고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매우 빨리 읽히는 책이기에 하룻밤과 반나절을 지나고 나니 두 권의 책장이 다 넘어가고 말았다.

<다 빈치 코드>의 비밀조직이 시온수도회라면 <천사와 악마>는 일루미나티를 다루고 <다 빈치 코드>의 비밀이 예수에 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통해 나타났었다면 <천사와 악마>는 과학과 종교의 기나긴 대립을 다루며 갈릴레이를 통해 나타낸다. 상징이나 기호, 예술, 문화 그리고 건축에 대한 치밀한 묘사는 <다 빈치 코드>만큰 생생하지 못하지만 <천사와 악마>는 물리와 과학을 다루면서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인 CERN을 흥미롭게 묘사하기에 입맛에 맞게 즐기면 되겠다.

그러나 전체적인 짜임새는 매우 유사하니 둘 중 어느 한 소설을 먼저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음 책은 훨씬 쉽게 읽히리라.

비교는 이쯤 해두고 내용을 들여다 보면..
책을 직접 읽기 전에는 제목만 보고 이 책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 노트>스러운 다양한 종교적 지식으로 가득차 있을 줄 알았다. 단순하게도 천사와 악마 이름이 자주 언급되면서 성서의 외전이나 고대 문서, 신비주의, 밀교,  뭐 이런 것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그건 그런 책을 읽기를 바랐던 나의 오해였고 이 책은 그저 과학에서 시작한다. 과학이 신인 CERN이 시작의 배경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입자물리가속기가 있는 CERN. 일반물리학 교과서에서 사진을 봤었는데... 그리고 댄 브라운은 즉시 반물질을 언급한다. 물질과 반물질. 나에게는 입자와 반입자라는 용어가 더 친숙한데 이 둘이 만나면 즉시 소멸됨을 들어 알고 있다. 그런데 내 지식은 거기까지다. 반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고 또 그것이 핵폭탄의 몇십배 위력을 발하는 폭발물로 혹은 깨끗하고 효율적인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 있다까지 진도가 나가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 책은 거기까지 진도가 나간다. (정말 그럴듯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CERN에서 태어난 반물질은 바티칸 시티를 테러하는 폭발물로 응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살인현장의 증거들은 그 범인이 현세까지 살아남은 일루미나티 조직의 소행이라 주장한다. 여기에서 두 인물이 끼어드니 하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이고 하나는 우리의 주인공 로버트 랭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시온수도회의 수장이었다면 갈릴레이는 일루미나티의 수장이 되는 셈. 잠깐 프리메이슨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만 호의적인 내용은 별로 없고 일루미나티에 대한 묘사들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호의적이다. 비밀이니 음모니 하는 말로 비밀스러운 조직의 성격을 음울하게 만들지 않으니 다행이다.

바티칸 시티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다. 얼마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하고 비밀선거회의인 콩클라베가 열려 콩클라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텐데 이 책은 그것을 뉴스에서 나온 것보다 훨씬 생생하게 묘사한다. 아마 이번 교황선거를 통해 콩클라베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었더라면 <천사와 악마>의 콩클라베가 그저 소설로 여겨졌으리라.

아마도 나머지 스토리들은 말해버리면 스포일러가 될테지.
과학자들로 득실대고 보안이 철저한 CERN에서 발생한 저명한 물리학자의 살인사건, 수백년전 건축된 고색창연한 성당에서 일어난 추기경들의 연쇄살인사건, 바티칸과 교황이라는 단어가 구식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종교는 언제나 흥미진진한 주제이기에 이 사건들을 쫒으며 기호학자의 해박함이 날뛰는 추리 스릴러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각자 범인을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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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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