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철이의 소개를 받아 김동훈 악기사에서 정현 첼로 300을 구입했다.
연구소 박실장님은 초보자용으로 정현 200을 추천했지만 어쩌다 보니 정현 300으로 눈이 높아졌고 김동훈 사장님이 제시한 파격적인(?) 좋은 조건 때문에 정현 300 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이로써 최우수연구실 상금이 몽땅 첼로 구매로 트랜스퍼.. ^^;;)

일단 서점에 가서 '첼로 첫걸음'이라는 5천원짜리 초보자용 교본을 하나 사들고 회사에 왔다. 집에서는 첼로를 꺼내 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부모님께는 비밀이다. 평소 내가 저질러 놓은 일들, 그러니까 스키 세트, 골프 세트, 인라인 세트 등이 집안 구석에 내 관심을 끌지 못하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 한 첼로를 집에 들고 가지는 못할 것이다. 내 동생만 입 다물면 부모님께는 비밀. 첼로 연주가 어느 정도 가능해 진 다음에 집에 들고 갈 생각으로 안전한 연구실 랩에 첼로를 두기로 하고 회사에 나온 것이다.

강습이 있는 화요일까지는 현을 켜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첼로 첫걸음'이란 책이 어찌나 친절하고 상세하던지 굳이 선생님이 없어도 연습이 가능할 것 같았다.

일단 활을 집어 들어 나사를 돌려 활선을 당겼다. 교본이 없었더라면 활털과 활대가 붙어버린 느슨한 활을 보고 어찌해야 할 지 대략 난감해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친절한 교본. 중앙의 활대와 활털의 간격이 새끼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조임나사를 오른쪽으로 돌려 팽팽하게 당기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새털에는 송진을 적절히 발라 길을 들여 놓으라고 되어 있다. 문제는 어느 정도 송진을 발라줘야 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길들여진 털에는 연주 전에 4~5회 정도 발라주라기에 나는 이보다 조금 더 많이 스윽슥 발라 주면 될거라 생각하고 수차례 문질러 주었다.

그리고 첼로를 몸쪽으로 기대어 자세를 잡고 2번 현인 D 현을 켰다. (교본에 D현 부터 시작하도록 되어 있다) 교본에는 분명 첼로는 소리 내기 어려운 악기가 아니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어인 일인가.. 소리가 삐걱거리며 잘 안나는 것이다. 헉.. 송진을 더 발라야 되는 건가? 아님 뭔가 자세가 잘못 된 건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해 볼 일은 송진을 정성스럽게 한 번 더 칠해보자 일 뿐. 위활, 중간활, 아래활..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문질렀다. 이 정도면 되는가 싶어 다시 자세를 잡고 첼로를 잡았다.

오옷..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미처 몰랐지만 송진이 현에 묻어나야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다른 현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D현만 켜야 하는데 3번현인 G 현이 자꾸만 건들어 져서 고민스러웠다. 이건 차차 연습으로 커버하자. 힘들이지 않고 활을 스윽슥 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소리가 나다니 이걸로 오늘 할 일은 다했다 뭐 그런 맘이었다.

다음으로 한 일은 사운드 튜너로 제대로 된 D음이 나는지 측정해 보는 것이었다. 튜너에 내장된 마이크가 음을 듣고 음의 높이를 표시해 준다. D현을  켰다. 튜너에 D 자가 표시된다. 옆에 있는 G 현도 켜보았다. 튜너가 G로 움직인다. 뭐.. 악기사에서 튜닝을 해주었을 테니 소리가 제대로 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걸 처음 겪어 보는 나에겐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아마도 당분간은 D현을 가지고 활 연습만 줄기차게 할 것 같다.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 몇 주 동안 반에 반 스윙만 연습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 심심한 걸 참아내느라 힘들었지만 그 때 충분히 한 것이 스윙을 몸에 익히는 기초가 된 건 사실이다. 첼로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끈기를 가지고 해보는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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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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