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밤, 내일 아침 눈을 떠야 한다는 사실 자체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역시 무소유의 삶이 최고인가?
암튼.. 저런 비현실적인 생각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갑자기 웃긴 장면이 떠올라서 쓰고 자려고 한다.
제주도에서 섭지코지에 갔을 때이다. 날씨도 너무나 좋았고 바람도 많이 불었는데 바람 때문에 파도가 꽤나 높이 쳐서 바위를 때리고 흩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함께 워크샵에 참석했던 이모박사가 아주 빈번하게 휴대폰을 들고 어디엔가 통화를 하는 것이었다. 눈 앞에 광경이 바뀔 때마다 전화를 걸어 통화하는 것 같았는데 심지어는 아무도 내려가지 않는 절벽을 내려가서는 역시나 전화기 붙잡고 떠드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아내에게 파도소리 들려준다고 귀찮음과 험한 길을 마다하고 파도 근처까지 다가갔던 것이었다. 그 동안의 빈번한 통화도 관광지가 바뀔적마다 열심히 전화로 설명을 해 주었음이 분명하다.

보통 좋은 장소에 가까운 사람이 생각나고 전화걸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는데 이박사의 경우에는 너무나 빈번하기에 옆에서 보면 솔직히 말해 너무 우습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무척 고무적인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 아저씨가 결혼한지 딱 1년 반된 신혼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나이 마흔두살에 말이다. 그러니까 신혼이라는 것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유치한거로구나 하는 사실이 무척이나 희망적이고 고무적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늦은 결혼은 그동안의 외로움을 보상하고자 남들의 네배 다섯배의 전화 통화 시간, 그리고 파도소리 실감나게 전파하기 등의 전화기 성능테스트를 수행하게 할런지도 모른다. 절벽을 내려가서 파도소리 들려주기와 같은 어려운 일을 저절로 할 수만 있다면 더 늦은 결혼도 불만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유치찬란하다고 느껴지니.. 아직도 덜 아쉽다는 건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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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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