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무 생각없이 켜져 있는 TV를 보고 있는데 고등학교 때 음악선생님이 짠 하고 등장.
'TV는 사랑을 싣고' 에서 탤런트 이신재씨의 게스트로 출연하신 거다.
그 프로그램에서 해주는 재현극을 보면서 어쩐지 그 선생님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결국 동일인물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나이 70이 넘으셨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정년이 얼마 안남으셨다고 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에는 가장 열정적인 선생님이셨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음악실 가득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을 들려 주시면서 아주 감각적인 해설을 들려 주셨던 일이다. 아마 나는 그 때 처음 음악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리라.

생각해 보니 더 많은 기억들이 있다. 우리학교에는 1학기가 끝날 무렵 열리는 합창대회가 있었는데 음악 선생님이 주관을 하시다 보니 당연히 그 분은 열심이셨지만, 우리 담임선생님이나 다른 과목 선생님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사실 약간 불만이셨을 거다. 대학가려고 공부하기도 바쁜데 무슨 노래냐.. 뭐 이런 거.
그렇지만 음악 선생님이 부추기는 경쟁심리와 열정 이런 것들에 도취된 나는 우리반이 꼭 일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우리 담임과 우리반 몇몇 애들이 주는 눈치도 알아채지 못한 채 이틀에 한번 연습을 시켰다. (설명:나 반장이었음. 엄마가 쓸데없이 반장한다고 구박해서 무척 슬펐던 기억도 있음.) 암튼간에 음악실이 차있으면 오르간을 들고 나가서 잔디 위에서 연습 시킨 적도 있고 그랬는데, 지겹도록 연습을 한 탓인지 등수 안에 들지 못했다. 발표가 끝나고 등수에 들지 못한 우리반 아이들이 얼마나 울어댔던지.. 고등학교 1학년 순수했던 때 일이다. 그런데 그 뒤로 나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야 말았는데 그 합창대회에서 우리반이 7등, 다른 말로 '꼴찌'를 했단 사실이었다. 등외는 발표를 안하는 거로 되어 있는데 우리 담임이 화가 났는지 아님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더니 꼴 좋다 뭐 이런 의도에서 였는지 나에게만 등수를 일러 준 것이다. 그렇게 나 혼자 꼴찌의 상처를 입었다.

그렇게 아팠던 합창대회의 기억도 어느새 저편으로 사라지고, 실기시험이 도래했다. 기악은 무조건 피아노로 하겠다고 하셔서 체르니에도 못 미치는 내 피아노 실력을 무시하고 동생이 치는 모짜르트 소나타를 며칠동안 연습했었다. 물론 모짜르트 소나타 중에서 가장 먼저 치는 곡의 1악장이었고 연습하면 못할것도 없는 그리 어렵지 않은 곳이었는데 문제는 이 곡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채 연습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혼자만의 박자감각으로 나만의 음악을 한 것이다. 내가 몇 마디를 치고 나자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 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나 나는 그 때의 나는 선생님이 왜 고개를 갸우뚱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밖에도 많은 기억들. 우리학교는 일본의 한 고등학교와 음악으로 자매학교를 맺고 있었는데 한해에는 일본 학생들이 대전에 와서 공연을 하고, 다음 해에는 우리 학교 관현악단 학생들이 일본에 가서 공연하는 행사를 맡아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적절한 조화였다. 여학교였던 우리 학교 학생들은 현악기 위주였고 남학교였던 일본 학생들은 밴드였으니까 이렇게 두 학교가 다 모여야 제대로 된 연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TV를 보니 음악에 대한 선생님의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 이시다. 퇴직 후 우리학교 제자들과 '사랑 오케스트라'를 만드셨고 지금도 일년에 두번 정기 연주회를 갖고 있다고 하신다. 음악과 함께 즐겁게 지내셔서 그런지 모습과 음성도 여전하시고..
무엇보다 내가 기분이 좋았던 것은 내 고등학교 때의 선생님과 탤런트 이신재의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똑같은 감성, 똑같은 열정을 지니고 있어 선생님 제자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늘 한결같이 열심인 모습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고 기억에 남는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아무 생각없이 켜져 있는 TV를 보고 있는데 고등학교 때 음악선생님이 짠 하고 등장.
'TV는 사랑을 싣고' 에서 탤런트 이신재씨의 게스트로 출연하신 거다.
그 프로그램에서 해주는 재현극을 보면서 어쩐지 그 선생님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결국 동일인물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나이 70이 넘으셨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정년이 얼마 안남으셨다고 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에는 가장 열정적인 선생님이셨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음악실 가득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을 들려 주시면서 아주 감각적인 해설을 들려 주셨던 일이다. 아마 나는 그 때 처음 음악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리라.

생각해 보니 더 많은 기억들이 있다. 우리학교에는 1학기가 끝날 무렵 열리는 합창대회가 있었는데 음악 선생님이 주관을 하시다 보니 당연히 그 분은 열심이셨지만, 우리 담임선생님이나 다른 과목 선생님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사실 약간 불만이셨을 거다. 대학가려고 공부하기도 바쁜데 무슨 노래냐.. 뭐 이런 거.
그렇지만 음악 선생님이 부추기는 경쟁심리와 열정 이런 것들에 도취된 나는 우리반이 꼭 일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우리 담임과 우리반 몇몇 애들이 주는 눈치도 알아채지 못한 채 이틀에 한번 연습을 시켰다. (설명:나 반장이었음. 엄마가 쓸데없이 반장한다고 구박해서 무척 슬펐던 기억도 있음.) 암튼간에 음악실이 차있으면 오르간을 들고 나가서 잔디 위에서 연습 시킨 적도 있고 그랬는데, 지겹도록 연습을 한 탓인지 등수 안에 들지 못했다. 발표가 끝나고 등수에 들지 못한 우리반 아이들이 얼마나 울어댔던지.. 고등학교 1학년 순수했던 때 일이다. 그런데 그 뒤로 나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야 말았는데 그 합창대회에서 우리반이 7등, 다른 말로 '꼴찌'를 했단 사실이었다. 등외는 발표를 안하는 거로 되어 있는데 우리 담임이 화가 났는지 아님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더니 꼴 좋다 뭐 이런 의도에서 였는지 나에게만 등수를 일러 준 것이다. 그렇게 나 혼자 꼴찌의 상처를 입었다. -_-;;

그렇게 아팠던 합창대회의 기억도 어느새 저편으로 사라지고, 실기시험이 도래했다. 기악은 무조건 피아노로 하겠다고 하셔서 체르니에도 못 미치는 내 피아노 실력을 무시하고 동생이 치는 모짜르트 소나타를 며칠동안 연습했었다. 물론 모짜르트 소나타 중에서 가장 먼저 치는 곡의 1악장이었고 연습하면 못할것도 없는 그리 어렵지 않은 곳이었는데 문제는 이 곡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채 연습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혼자만의 박자감각으로 나만의 음악을 한 것이다. 내가 몇 마디를 치고 나자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 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_-;;

그 밖에도 많은 기억들. 우리학교는 일본의 한 고등학교와 음악으로 자매학교를 맺고 있었는데 한해에는 일본 학생들이 대전에 와서 공연을 하고, 다음 해에는 우리학교 관현악단 학생들이 일본에 가서 공연을 했는데 선생님이 이 행사를 맡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적절한 조화였다. 여학교였던 우리 학교 학생들은 현악기 위주였고 남학교였던 일본 학생들은 밴드였으니까 이렇게 두 학교가 다 모여야 제대로 된 연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친구들이 1학년 때 관현악단에 들고 2학년이 되면 공부한다고 대학간다고 관현악단을 나오고..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음악수업은 1학년과 2학년 때만 배우는데, 2학년 말 즈음에 3학년이 되면 음악수업이 없으니까 재미있는 걸 가르쳐 주겠다면서 선생님이 클래식 기타를 잔뜩 꺼내 오셨다. 한반에 50명쯤 되는데 기타는 스무개 정도 밖에 안되어서 두명이 번갈아 배워야 했는데 하나를 배우고 짝꿍한테 기타를 건네주고 다시 내가 받아서 하고 뭐 이런 식이었다. 그 시간이 무척 재미있고 신기했지만 선생님은 우리들이 조금 더 욕심내기를 원하셨던가 보다. 몇 시간 가르치시더니 두 명이 한 기타로 배우는데 서로 많이 치겠다고 다투기는 커녕 오히려 너 먼저 해라 양보하는 식이니 가르킬 맛 안난다면서 너희는 그냥 노래라 불러라.. 이러시고 말았다. 속으로 무척 안타까웠지만 우리는 하나같이 바보가 되어 선생님을 조를 생각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클래식 기타를 배울 기회는 멀어지고 말았다. 암튼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다. 기꺼이 주시지만 배우고자 하는 눈빛이 아닌 우리에게 강제하실 생각도 없으셨을 것이다.

오늘 TV를 보니 음악에 대한 선생님의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 이시다. 퇴직 후 우리학교 제자들과 '사랑 오케스트라'를 만드셨고 지금도 일년에 두번 정기 연주회를 갖고 있다고 하신다. 음악과 함께 즐겁게 지내셔서 그런지 모습과 음성도 여전하시고..
무엇보다 내가 기분이 좋았던 것은 내 고등학교 때의 선생님과 탤런트 이신재의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똑같은 감성, 똑같은 열정을 지니고 있어 선생님 제자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늘 한결같이 열심인 모습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고 기억에 남는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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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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