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렌디피티 2006. 5. 8. 23:32
똑같은 사건을 두고 각기 사람마다 서로 다른 진술(?)을 할 때, 그래서 그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게 될 때.. 이런 상황을 묘사하는 말로 라쇼몽이란 말을 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란 영화가 미친 영향이 매우 강력했음을 역으로 알게 되는 셈이기도 한데..

생뚱맞게 라쇼몽을 음미해 보는 것은 최근에 본 CSI 에피소드가 인상에 남기 때문이다. CSI 시즌 6 에피소드 21, 에피소드 제목은 Rashomama 인데, Rashomon 과 mama의 합성어로 짐작되는 타이틀로 2가지 사건을 함축한다고 하겠다. CSI 요원들이 범죄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들이 Nick의 차안에 있는데 밥먹는 사이 누군가 이 차를 훔쳐가 버린다. 다시 말해 수집한 증거들이 도난을 당하고 결국 요원들은 물리적 증거가 아닌 '기억'에 의존하여 증거들을 재수집한다. 이 과정에서 요원 각각이 똑같은 사건 현장에서도 다른 관점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각자의 견해로 추리를 펴나가는 (rashomon 적인) 것을 보여준다. mama가 붙은 이유는 간단한데 살해당한 피해자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결혼식장에서 사망한 엄마.

암튼 CSI 시즌 6이 거의 끝나가고 있어 그런지, 이번 에피소드에는 더 공을 들여 독특하게 이끌어 나간 것 같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의 메시지는 그리썸 반장의 입으로 분명하게 전달된다. 모두 각자의 기억에 의존한 수사를 펼치지만 그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하나이고 모두 같다고 말이다. 라쇼몽의 모호함과 대비되는 그리썸 다운 결론이다.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리썸의 시니컬한 인간미는 매우 매력이 있다. 시니컬한 인간미라고 모순된 말 같은데, 나로써는 이 말 말고는 그리썸의 캐릭터를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 그리고 오늘은 CBS 홈페이지에서 새로운 표현을 하나 익혔다. Technicolor cynical 이란 표현이다. 이 표현은 Sarah가 가지고 있는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것인데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총천연색으로 냉소적인' 이란 뜻이 된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Sarah가 결혼과 사랑에 대해 보인 반응, 그리고 내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부정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할 때를 떠올려 보면 바로 이렇게 총천연색으로 시니컬하게 됨을 즉각 깨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