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생활의 재발견
충동 구매 했다.
세렌디피티
2004. 10. 10. 19:32
필요한 물건은 딱 두개. 책장과 책상서랍을 사는 것. 이미 집의 책장은 모자라 책들이 책상 밑에 쌓여있고 책상서랍도 마찬가지로 물건들이 죄다 책상위로 나와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는 김에 이왕이면 집에 가구랑 맞춘다고 일룸에서 사기로 맘을 먹고 갤러리아에 갔다. 6단짜리 600mm 폭 책장 하나가 대략 19만원, 4단 구성의 책상 서랍은 18만원. 헉, 왜 이리 비싸졌나 싶었는데 6월 1일자로 10%가 올랐기 때문이란다.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랴.. 그렇다고 저렴한 맛에 다른 메이커의 책장을 사들이기는 싫었다. 후다닥 계약을 마치고 3개월 무이자로 샀다는 사실로 나 자신을 위로하며 백화점 본 매장을 향했다. 백화점 1층 매장은 언제나 화려하고 좋은 향기가 난다. 정말 백화점에 올 때마다 난 내가 돈 많고 잘나가는 여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허영심을 얇은 지갑 생각으로 누르며 이리저리 둘러본다. 이쁜 가방, 이쁜 신발, 이쁜 옷과 화장품들. 그래도 오늘 쇼핑목록엔 책장과 서랍장 딱 두가지 뿐이었기에 비싼 물건들은 다 뒤로 하고 오로지 구경만 하다가 영락없이 '세일'이란 함정에 푹 빠지고 말았다. 여자란 싸단 이유로 필요없는 물건을 사고, 남자란 필요한 물건을 비싸게 사는 동물이라 했던가. 실크 스카프가 매대에 나와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충분히 할인 가격에!! 안그래도 스카프 하나 있으면 나쁘지 않지 하고 생각하던 참에 연지색 미니 스카프를 발견한 순간 내 눈빛이 변하기라도 했던 모양. 판매사원 한 분이 스카프를 냉큼 들고 '한번 둘러보세요. 매어 줄께요' 하면서 다가온다. 피할 틈도 없이 이미 내 목엔 스카프가 걸리고 '거울은 여기 있어요'하는 말에 몸은 자연스레 돌아가고 '어머.. 뽀얀 피부에 정말 잘 어울려요. 이거 신상품이예요' 하는 말에 '얼마예요?' 하고 물어보는 수순을 따르는 것이다. 3분 후 상황은 물으나 마나. 계산을 치루고 스카프는 목에 그대로 걸려 있고 매대를 떠나 오기 직전 어떤 여자 손님이 내 목에 두른 스카프를 보면서 '저 스카프가 이쁜데..' 하는 말에 위안을 삼는다. 그건 딱 한장 남은 스카프였던 것이다. ㅋㅋ. 그러나 상황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어깨에 매는 적당히 큼지막한 숄더백을 하나 발견했다. 진짜 가죽이 아니라서 매우 저렴한 가격에 나와 있었는데 특이한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가지고 있으면 활용도가 높을 법한 아이템이라 할 만 했다. 안그래도 가방은 하나 필요했는데, 현경이랑 구경가기로 했는데.. 그 사이 저 가방은 사라지겠지.. 구매 결정! 흐흐.. 이제 나에게도 숄더백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청바지 구경. 지난 봄에 산 감색 트렌치 코트에는 오로지 청바지만 어울린다. 그런데 청바지가 더 이상 맞질 않는다. 살이 빠져버려 줄줄 내려오는 것이다. 애초에 넉넉한 사이즈로 산 것이 화근이었지만 살이 빠진 것으로 위안. 대신 새 청바지가 필요하다. 혹시나 똑같은 제품이 있나 싶어 게스 매장에 갔다. 역시 없다. 스타일이야 그렇다 쳐도 나는 예전 내 청바지의 물빠진 탁한 진청색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는데 그런 놈은 없고 아주 밋밋한 청색의 무난하기 짝이 없는 기본 청바지만 있는 것이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샀다. 왜냐.. 트렌치 코트를 빨랑 입어야 하기 때문에.. -_-;; 뭐.. 꼭 나만 이런게 아니라 여자들의 구매는 이렇게 이루어 진다고 감히 주장한다. 충동 구매라 하지만 충동 구매도 아닌 것이다. 언젠간 살 아이템, 눈에 보일 때 산다는 논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하 매장에서 1,000원 짜리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미샤 매장에서 정말 정말 저렴한 화장품 몇 가지를 샀다. 미샤는 뭘 믿고 이렇게 싸게 파는 거냐. 외제 브랜드의 화장품 매장에서 파는 마스카라 하나 가격이면 미샤에선 10개의 마스카라를 살 수 있다. 미샤가 자꾸 자꾸 커나가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미샤에서 집에 다 떨어진 클렌징 크림 등 몇 가지 아이템을 사고 백화점을 나왔다. 운동한다고 백화점까지 걸어왔기 때문에 여기저기 매장에서 나누어준 무료주차권은 다 버렸다. 그래서 오늘은 비록 주머니는 얇아졌지만 보람찬 하루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혼자 쇼핑하는 시간들이 참으로 참으로 행복했다. 역시 나는 혼자 노는 타입이 맞는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