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싸움
며칠전 회사에서 감기 바이러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이러스는 공룡보다 더 오래전부터 살아오고 있는 것 같다, 지구의 주인은 바이러스다 뭐 이런 썰렁한 이야기였는데 옆에 있던 박모아저씨가 왜 지구의 주인이 인간이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일리없는 말도 아니어서 위기를 모면할 생각으로 성경에 그렇게 써있지 않냐고 대꾸해줬다. 그랬더니 성경이야 인간이 쓴거니까 그렇죠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강언니, 눈을 치켜뜨며 박아저씨에게 따졌다.
"아니, 성경이 인간이 쓴거라고요? 천주교 신자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하고 말이다. 설명하자면 강언니는 개신교 신자고, 박아저씨는 천주교 신자. 강언니가 순간적으로 열이 받으면 신경질 부리는 경향이 있고 그걸 아무도 감당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조용해졌는데, 강언니도 종교문제가지고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더이상 이 문제로 이야기하지 말자 하고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박아저씨. "그럼 창조론을 그대로 믿나요?" 하고 반응했다.
굉장히 재미있을 싸움이 될 뻔 했지만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종교문제보다는 맨날 얼굴 부딪히는 동료라는 점이 더 강하게 작용한 것 같았다. 성격차이도 있을 것이다. 내용과 관계없이 우선은 목소리 큰 사람이 강언니니까 박아저씨도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종교가 없는 나로써는 강언니의 반응이 오히려 더 황당했다. 성경말씀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것이 나로썬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천주교인인 박아저씨는 많은 모순들을 받아들이고 믿으려 노력한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내 쪽에서 보기엔 더 합리적으로 보였던 반면 눈을 치켜뜬 강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자신이 발견한 사실과 배우고 들은 종교적 암시 사이에서 모순이 발견한 과학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자신의 뇌를 두개의 논리영역으로 갈라놓고 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과학이 발전할 수록 신학자들이 애먹은 일들은 성경의 모순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고고학적 입장에서 성경을 재해석하고자하는 시도도 많았다. 이런 판국에 성경을 누가 썼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다투다니..
왜 종교와 믿음이라는 영역은 어떤 논리가 삽입되어 설명되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걸까?
종교의 무서움은 가까운 곳에 있다.
며칠전 회사에서 감기 바이러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이러스는 공룡보다 더 오래전부터 살아오고 있는 것 같다, 지구의 주인은 바이러스다 뭐 이런 썰렁한 이야기였는데 옆에 있던 박모아저씨가 왜 지구의 주인이 인간이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일리없는 말도 아니어서 위기를 모면할 생각으로 성경에 그렇게 써있지 않냐고 대꾸해줬다. 그랬더니 성경이야 인간이 쓴거니까 그렇죠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강언니, 눈을 치켜뜨며 박아저씨에게 따졌다.
"아니, 성경이 인간이 쓴거라고요? 천주교 신자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하고 말이다. 설명하자면 강언니는 개신교 신자고, 박아저씨는 천주교 신자. 강언니가 순간적으로 열이 받으면 신경질 부리는 경향이 있고 그걸 아무도 감당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조용해졌는데, 강언니도 종교문제가지고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더이상 이 문제로 이야기하지 말자 하고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박아저씨. "그럼 창조론을 그대로 믿나요?" 하고 반응했다.
굉장히 재미있을 싸움이 될 뻔 했지만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종교문제보다는 맨날 얼굴 부딪히는 동료라는 점이 더 강하게 작용한 것 같았다. 성격차이도 있을 것이다. 내용과 관계없이 우선은 목소리 큰 사람이 강언니니까 박아저씨도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종교가 없는 나로써는 강언니의 반응이 오히려 더 황당했다. 성경말씀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것이 나로썬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천주교인인 박아저씨는 많은 모순들을 받아들이고 믿으려 노력한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내 쪽에서 보기엔 더 합리적으로 보였던 반면 눈을 치켜뜬 강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자신이 발견한 사실과 배우고 들은 종교적 암시 사이에서 모순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자신의 뇌를 두개의 논리영역으로 갈라놓고 살았을까? 과학이 발전할 수록 신학자들이 애먹은 일들은 성경의 모순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고고학적 입장에서 성경을 재해석하고자하는 시도도 많았다. 이런 판국에 성경을 누가 썼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다투다니..
왜 종교와 믿음이라는 영역은 어떤 논리가 삽입되어 설명되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걸까?
종교의 무서움은 가까운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