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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과의 두뇌게임

세렌디피티 2002. 1. 26. 00:00
아인슈타인과의 두뇌게임
나대일 지음/동아일보사/초판 1993년(초판2쇄 1993년)
우리은하는 대우주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저 보일락 말락, 있을듯 말듯한 점에 불과하다. 우리은하는 태양과 같은 별 1000억개 정도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은하 안에 그렇게 많은 수의 별이 있는데, 우리은하와 비슷한 크기의 다른 은하 역시 무수히 많다. 관측되는 다른 은하의 숫자 역시 대략 1000억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무수한 그런 은하 중 보일락 말락한 우리은하, 그 안에 있는 보일락 말락한 태양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지구에 투영된 모든 것이란 그저 덧없게 보인다. 영양왕의 호연지기, 한니발의 분노, 두보의 비애는 모두 티끌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대우주는 이렇게 보는 이를 항상 겸손하게 한다. -나대일
    저자는 책 머리말에서 '현대 물리학의 최대 발견이었던 상대성이론과 이를 바탕으로한 현대 우주론을 되도록이면 쉽게 써보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물론 '쉽게'라는 표현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아인슈타인이 쉽게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직접 기술한 <상대성이론>이란 책도 아인슈타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어린 손녀딸도 이해할 만큼 쉽게 쓴 책이라나.. 이런 일화 때문인지 저자도 알기 쉽게 쓰는 것의 어려움을 여러차례 토로하고 있지만, 내 개인적인 평가로는 아인슈타인이 직접 쓴 <상대성이론>보다는 이 책이 쉬운 것 같으니 저자의 노력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저자 나대일 박사의 세미나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저자의 약력을 들춰본 결과(1990 ~ 1992년 미국 버클리대 입자천체물리연구소, 1993년 표준과학연구원 천문대 선임연구원이라고 되어 있음) 1993년, 그러니까 내가 대학 3년이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러나 세미나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고(^^;) 우리과 교수님과 농담을 나누던 모습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뒤 시간이 흐르고 나는 나대일 박사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서 또 얼마 뒤, 나박사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을 발견했는데 마이클 크라이튼의 유명한 소설 <쥬라기 공원>에서다. 바로 묘한 분위기의 수학자 닥터 말콤이다. 말콤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나박사의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그저 주관적인 이미지일 뿐이니까.. 게다가 지금은 그런 이미지마저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암튼 각설하고 책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 책의 재미있는 구성 중 하나는 과학사 에피소드들을 중간 중간 끼어놓아 독자들이 재미를 느끼도록 배려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숨에 상대성이론으로 직행하지 않고 빠른 템포로 과학사(물리학)를 훝고 지나간다. 상대성이론을 이야기하려면 뉴턴의 고적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고, 또 만유인력과 맥스웰 방정식을 이야기하려면 케플러와 갈릴레이, 패러데이 이야기도 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나서 아인슈타인이 16살에 던졌다는 질문 "만약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달린다면 빛은 어떻게 보일까?"에 도착한다. 그리고 종종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을 우리에게 소개하면서 책 제목처럼 두뇌게임(?)을 유도한다. 여기 책의 한 귀절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끝없는 호기심 탐구가 우리를 즐겁게 한다.

    '고전역학과 전자기학의 충돌'이란 바로 이렇게 신성한 상대성원칙을 전자기학의 총아로 등장한 빛이 노골적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 문제는 금세기 초 모든 과학자들을 괴롭혔던 장본인으로, 이 때문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금세기초 '모든 문제는 빛으로 통한다'는 농담이 학계에 떠돌았을 정도였다.
    그러면 과연 빛이 어떻게 상대성원칙을 위반하고 있는지를 좀 더 자세히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을 소개한다.
    밀폐된 방에 어떤 아가씨가 손거울을 들고 앉아있다고 하자. 방은 엄청나게 크고 그 한 구석에는 엄청나게 밝은 촉광의 전구가 빛을 발하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방 어디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손거울을 통해 비추어 볼 수 있다. 이 경우 상대성 원칙에 따른 그녀는 그녀가 있는 방 전체가 정지해 있는지, 아니면 일정한 상대속도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런데 어는 한순간 그녀가 손거울을 들고 전등빛에서 멀어져가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고 하자. 그녀의 달리는 속도가 광속에 이르면 전등에서 나오는 빛은 그녀의 손거울에 다다르지 못하게 된다. 그 순간 그녀의 손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사라진다. 이 때 그녀는 '아하! 나는 빛의 속도로 달리고 있구나!'하고 그녀가 달리는 속도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그녀가 달리는 속도를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상대성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이처럼 아인슈타인은 평소에 명쾌한 사고실험을 좋아했다. 혼자 사색에 잠길 때마다 그는 이러한 실험방법을 궁리해냄으로써 수십명의 우수한 학자들이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수학계산이나 논리전개를 대신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앞서 아인슈타인이 16세 때 던졌던 질문 "사람이 빛의 속도로 달리면 빛은 어떻게 보일까?"를 상기해 보자. 이 역시 관측자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였을 때 '빛의 파동성이 사라진다'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소개된 아인슈타인의 두개 사고실험 모두 관측자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다다르기만 하면 맥스웰방정식이 예언하는 빛의 파동성이 깨어지고 고적역학에 있어서의 신성한 상대성 원칙이 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왜 하필 물체의 운동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이런 이상한 현상들이 빚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상대성원칙은 빛이 수반되는 전자기현상에서만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관측자가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틀린 것일까. 이런 문제들이 바로 금세기 초 많은 석학들을 괴롭혔다. 이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20세기 최대의 이론으로 알려진 특수상대성이론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2002.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