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 권태와 어느 안정감 ― 소시민성 속에 자기를 고정시키려는 의도와, 또 그 의도의 무용함과 번거로움을 의식하는 데서 오는 텅 빈 공허감이 내 가슴을 찬 바람 불 듯 지나간다. 감정도 애증도 다 멀어진 느낌. 가정, 직장, 나, 국가, 사회...... 이런 단어들이 아무 연결도 없이 내 머리를 지나갔다.
1월 20일 결별은 쉬운 일. 그러나 그 다음이 항상 문제인 것이다. 사고는 항상 사실적인 힘임을 믿고 있다. 끊겠다는 의지가 끊는 행위와 같은 것을 뜻하는 셈이다. 그러나 사실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한 미소나 한 눈동자, 한 목소리를 기억의 표면에서 말살해 버리는 것은...... 많은 극기와 시간의 풍화 작용의 도움이 필요하다. 잊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관념이 긍정한 행위를 우리의 감정이 받아들이기에는 또 하나의 훈련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듯이 완전한 '자유 의지'는 아닌 것 같다.
From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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