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짜리 조카가
이번 추석에 디카로 찍은 가족사진들을 주고 받기 위해 포항에 사는 조카의 이메일 주소를 받아왔다. 주소가 msn.com 으로 끝나기에 별 생각없이 msn 메신저에 친구로 등록해 놓고(최초임) 있었는데 조금 전 컴퓨터를 켜자마자 로긴했습니다 메시지가 뜨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대전 고모다' 하고 신분을 밝혔는데 이 녀석이 고모? 어떤 고모? 하면서 딴청이기에 열이 좀 났다. 그리고 이 녀석이 계속 반말이네.. 너 맞을래 했는데도 계속 반말. 흐.. 그래 내가 졌다.
어차피 옆에 없어서 때려주지도 못할 터 본론이나 이야기 해야지 하고 사진 잘 받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하는 소리가
'사진이 뭐 그래? 인쇄했더니 나뭇잎도 각이 지고 사람도 각이 지고..' 어쩌구 저쩌구.. 게다가
'210만 화소짜리 카메라가 뭐 그리 비싸? 쿨픽스가 훨씬 낫다.'고 따지질 않나.. 아니 이 눔이 정말.. (참고로 이 녀석이 들고 온 디카는 신형 니콘 쿨픽스였고 나도 그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에 잠깐 눈이 돌아갔었다.) 암튼.. 그래도 질 순 없잖은가? 점잖게 (열을 식히며) 말해줬다.
'resolution이 640*480이니까 너무 크게 뽑으면 각이 질거다, 그리고 포토샵 같은 거로 CMYK(흐흐. 지난번에 mario한테 한 수 들은거)모드로 해서 잘 뽑아라' 라고 응수했다.
이쯤이면 그냥 넘어갈 줄 알았다. 다시 잘 뽑아보죠 뭐 이렇게 말할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역시 난 구세대 였다. 조카 녀석은 전혀 기죽지 않고 계속 종알댄다.
'A4에 4장 나눠서 엡손 810 포토 프린터로 뽑았는데.. 고급 매트용지를 사용했고..'
뭣이라.. 포토 프린터란 말에 일단 기분이 나빠졌는데 그 보다 A4 한장에 4등분해서 뽑았으면 resolution과는 전혀 무관하게 된다. 순간 할 말이 없어졌지만 '우리집에서 뽑았을 때는 전혀 문제없던데?' 하고 말해줬다. 사실 나는 아직 인쇄전이었음에도.. (그래도 거짓말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각이 져서 사진이 망가진 일은 없었던 것이다. -_-;;)
어쨌거나 위기를 벗어나야 했다. 중3짜리 꼬마하고 내가 무슨 이야길 하고 있담.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꼬마 녀석이 디카 어쩌구 하는 말을 던졌고 나는 별 생각없이 '마치 필카 써본 사람 처럼 말하네' 하고 응수 했는데.. '필카가 뭐야?' 하고 묻는 것이다. 흐음. 필름카메라라고 알려주니까 이 녀석이 화제를 싹 바꿔버렸다. 괜히 자기 컴퓨터가 별로 안좋다는 둥, 메인보드를 바꿔치기 해야겠다는 둥 어쩌구 하는 것이다. 내 참.. 그래서 돈 모아서 좋은 노트북이나 하나 사라 했는데 이게 또 화근이었다.
이 녀석이 '중3이 무슨 수로 돈을 모아.. 모바일 아니면 안사. 200만원은 넘을텐데..' 하는 거다.
'모바일? 무선 랜카드 달린 노트북 말하는 거냐?' 흑.. 이 질문이 나의 실수였다.
돌아온 대답은 '모바일 cpu' 였고 나는 내 노트북의 cpu가 펜티엄-M 그러니까 이 M이 모바일의 그 M이란 것도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고 말았다.
암튼 그랬다. 그 다음에 캐쉬가 512 아니면 안산다 어쩌구 하는 식의 실수를 그 녀석이 하지만 않았더라면 난 아직도 마음에 상처를 입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 (-_-;;)
이렇게 짧고도 자존심 구기는 msn 메신저 최초의 채팅이 끝나가고 있었다. 앞으론 조금 더 점잖은 척 해야겠다. (푸하) 그리고 되도록 컴퓨터나 디지탈 디바이스 쪽 대화는 들어주다가 허를 찌르는 쪽으로 노선 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