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렌디피티 2008. 2. 8. 22:36

의외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항시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고 그것은 대개 하루 이틀 뒤의 근시안 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도통 예감할 수 없는 것도 있으니 때론 이런 일들이 나로 하여금 운명이나 인연에 대해 생각케 한다.

음.. 조금 생뚱맞게 시작된 포스트다. 사실 조금 전 황지우 시인의 詩를 우연히 만나 읽다가 문득 내가 아는 사람 생각이 났고, 마치 그 사람은 나에게 늘 이 시를 읽어 주고 있는 듯 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시를 한편 읽어보고 시를 한편 적어본다. 매우 의외적으로..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