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렌디피티 2001. 11. 23. 18:43

'사주'란 걸 여러 차례 보았다.
그리고 그 까닭은 대부분의 결과를 '믿을 수 없어서' 이다.
그러니까 한번의 결과는 신뢰할 수가 없고(사실 신뢰한다는 말 자체가 웃기지만) 여기저기서 여러번 보게 되면 필터링이 되거나 공통분모가 발생해서 어느 정도 그럴듯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였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일테니 여기에다 그냥 쓰도록 한다.
한번은 회사 선배의 장인 되시는 분이 사주를 봐주셨다. 작년 1월, 생시와 이름을 적어주고 편지지 두페이지 분량의 글을 얻었었는데, 한문이 너무 많고 암시적인 말들이 많아서 회사 선배가 직접 찾아뵙고 물어보자고 하길래 찾아갔었다. 그 선배는 벤처 창업해서 회사를 떠나게 된 상황이었기에 창업하면 회사가 잘 되겠냐 등을 물으려고 했고, 내 경우엔 (뻔하지만) 언제 시집을 가느냐 였다. -_-;; 그리고 그 어른의 대답은 회사는 동업자 사이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썩 좋지는 않다, 그리고 나는 조만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뭐 이정도 였다. 특히나 작명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이름도 봐주셨는데 그 선배나 나나 이름이 안좋다고 이름을 새로 지어주셨다. (이 때 지어진 내 이름은 아마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름일거다. -_-;;) 행정적으로 이름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니 새로 지은 이름을 새긴 반지를 낀다던가 하는 방법을 쓰라는 말도 하셨는데 얼마 후 벤처 사장이 된 선배는 커다란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 뒤로 일년쯤 지나 그 선배를 다시 만났는데 대뜸 묻는 말이 "그 어른 말이 맞는교?" (경상도 사투리를 씀) 였다. 그리고 내 대답은 (일년 가량 흘렀건만 여전히 외로운 싱글이기 땜에..) "글쎄요. 뭐 별로.." 였고 그 선배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냐면 동업자랑 문제도 있고 회사도 어려울 것이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잘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잘나간다는 것은 단기적인 안목이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는 훌륭한 상황인거다.
만약 이것이 새 이름을 새겨 넣은 반지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럴듯 한가?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것은 해석의 관점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반지를 만들어 끼운다는 행위는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즉 미신(혹은 주술이나 주문, 부적같은)의 관점에서냐 노력의 관점에서냐 이다.
미신의 관점은 설명할 여지도 없고 노력의 관점은 (물론 멍청한 사람이 아닐 바에야 반지하나에 운명을 내맡길리가 없지만) 인생의 전환적인 시점(여기선 창업을 말함)에서 불길한 요소를 없애고 자신의 노력을 믿겠다는 해석을 말한다. 여기서 이름이 실제로 나쁘다던가 좋다던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걸 따지고 있을 사람이라면 애초부터 사주나 성명점을 봤을리가 없다.
그리고 내가 생각컨데 바로 이 허점이 각종 동양점과 서양점 웹사이트가 유료로 운영될 수 있는 이유다. 그들은 소위 '참고로 하라'는 말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다. 절대적으로 믿지 말고 그저 '참고로' 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요즘 누가 인터넷 점을 100% 심각하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들이 내건 '참고자료'가 객관적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현재 상황, 심지어 미래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에 혹하는 것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누구나 자신의 거울을 가지고 있는데, 이 거울은 흐릿해서 잘 안보이기 때문에 사주사이트 운영자가 조금 깨끗하게 닦아주는 것이다. 애초부터 환히 비추이는 깨끗한 거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울 닦아줄 사람이 필요가 없다. 그리고 부지런한 사람은 자기 거울 자기가 닦으면 된다. 그것마저도 귀찮은 사람은 그냥 안닦고 지저분한대로 살면 될 거다. 가끔 왜 이리 흐리멍텅해 하고 투덜대면서 말이다.
애초부터 흐릿한 거울을 가지고 있던 나는, 거울닦이들의 거울 닦는 능력이 의심스럽기도 할 뿐더러 이런 의심을 확인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거울닦이 광고들 볼때마다 혹할 것 같아 위에서 언급한 분을 비롯해서 우리 실장님이 잘 아신다는 도사(?),  자신만큼 사주를 잘 보는 사람 별로 못봤다는 모 교수님, 구시청옆 (유명하다는 무슨) 작명소까지 순례를 했다. 여기까지는 우연찮게 기회가 닿아 사주를 묻게 된 것이지만, 그것도 의심스러워 시간을 들여 여러 웹사이트를 찾아가며 확인해 본 적도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 이 결과들을 필터링하고 공통분모를 찾아 보긴 했지만 얻어진 결과 자체가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결과들을 바탕으로 한 '해석'과 그 후의 행동이 중요할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쯤 하고 나면 거울닦이들을 일일이 확인한 것이 웃기는 일이라는 감을 잡게 된다.
그래도 내 경우에는 '의심' 하나를 없앴다고 위안해 본다. 아직 몇가지 의문점이 남아있긴 하지만 살아가면서 천천히 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