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개팅 이야기 II
첫번째 '나의 소개팅 이야기'를 쓴지 한달정도 지난 것 같다.
후편을 쓰겠다고 해놓고는 쓸 마음이 사라진 채로 살다가, 약속한대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아서 이어 쓴다.
친구가 소개시켜준 그 외과의사 아저씨랑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만나서 차를 마시러 갔거나 가볍게 맥주나 한잔 마시러 갔거나 그랬을 것이다.(기억이..-_-;;)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인데, 그 아저씨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정말이지 그 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가 한 이야기들은, 그 스스로 나름대로 깊이 고민한 흔적이 묻어 있는 사는 이유에 대한 사고의 결과물들이었다.
그가 물은 첫번째 질문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는 것이었다.
질문을 조금 더 구체화 하면, 미래의 어느 시점을 가정하고 그 시점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기를 바라느냐는 것이었다.
참 당황스런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이지 그냥 살아만 왔지 내가 어떤 모습이길 구체적으로 그림 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녀 시절 동화같은 삶을 꾸었던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다 잊고 살고 있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언제나 막연히 잘될거(?)라고만 철없이 생각했었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에게 3년, 5년 뒤의 미래를 현실적으로 상상해보도록 이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뭐..사실 지금도 없다.)
어쨌거나 그는 구체적인 대답을 해주길 원했고, 나는 그제서야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초 머리를 굴린다고 알아지는 것이 아니질 않는가.. 그냥 별 문제없이 살아지길래 그냥 그렇게 살아왔는데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과연 어떤것인가를 어떻게 몇 초안에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암튼.. 답을 하긴 했다. 그것이 지금도 내가 정말로 원하는 모습인지 나는 모르겠다.
내 답은 '어느 저녁 무렵 편안하고 깨끗하고 아늑한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기다리며 여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 이었다.
그것은 정신적 물질적 불편함이 전혀 없고, 사랑으로 뭉친 견고한 가정을 꾸려낸 뒤 여유를 부리며 앉아 있는 모습.. 그리고 내 소중한 사람들이 내게로 오는 이미지.. 그런 것들이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새 잠재되어 있는 복합적인 욕구가 수초안에 수면위로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그 답을 하고 나서 나는 참 창피했다. 뭔가 어설픈 거짓말을 한 것 같기도 했지만, 사실 난 그런 모습을 실현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현재도 하지 않는 인간이란 것에 스스로 찔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서태지의 환상적 랩, '환상속의 그대'의 가사 그대로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암튼 그렇게 그의 질문은 나를 아프게 했다. 지금도 그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하면 나는 참으로 당혹스럽다. 아직도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가 물은 두번째 질문은 '당신의 이상형은?' 하는 것이었다.
이상형. 어쩌면 semiko는 대학 1학년 때 장난스럽게 말해준 내 이상형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리라.
한번 입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이미지가 더욱 구체화 되어 기억속을 유랑하다가 어떤 유발기제를 만나면 100% 반사적으로 그 이미지가 다시 떠오르는 법이다.
그렇다고 그 우스꽝스런 이미지를 그에게 말해주고 싶진 않고, 나는 역으로 같은 질문을 하는 것으로 내 대답을 회피해 버렸다.
그의 이상형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완벽한 여성' 이라고 한다. 그가 실제로 알고 있는 한 여자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이름만 대면 한국사람 모두가 아는 집의 딸. 아름다운 외모(미스 코리아였댄다-_-;;). 그리고 다시 그의 표현을 빌자면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떨어뜨려놓아도 혼자 힘으로 살아서 돌아올' 여자. 또한 덪붙혀 말하길 집안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생활이며 학비며 모든 걸 혼자서 다 해결하며 사는 여자라고..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해도 그렇게 살기를 고집하는 여자라고..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화가 나버렸다. 물론 내색할 수는 없었지만, 첫째로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여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그녀와 비교했기 때문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살아올 여자라고..? 그리고 그 이유가 집안이 그렇게 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알아서 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나는 2지망으로 대학에 붙어서 장학금도 못타고 첫 등록금을 부모님이 내주신걸 지금도 부끄러워 하고 있으며, 그 뒤로는 지금까지 학비며 용돈이며 부모님께 손벌린 적이 없다고. 그리고 그 이유는 집이 부자인데도 독립심이 투철한 때문이 아니고, 내 현실적인 상황이 나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게 했기 때문이라고..
결국 표면적으론 똑같이 살고 있음에도 그 뒤의 스토리에 따라 너무도 다르게 보이는 것이 화가 난 주된 이유였던 것이다. 복합적인 결과니까 이런 감정을 굳이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하진 않겠다. 어쨌거나 기분이 나빴던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다시 몇 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다음부턴 질문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 였다.
그는 그냥 이야기만 했고 나는 그냥 들은대로 듣고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니 그가 몇가지 컴플렉스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고 말해도 큰 실례는 아니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 사는 삶'에 대한 이미지를 준 사람이다. 세속적인 목적을 위한 최선이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이면 그뿐 이라는 이미지 말이다.
그리고 그가 해준 좋은 이야기들을 나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일종의 자기 암시같은 것을 내가 다시 새길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특이함 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만남이었다.
어쩌면 그 짧은 시간의 기억을 내 입맛에 맞게 조작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랴. 해석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오늘도 내 해석에 의지해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혹은 깨닫고 말리라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