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용문
톨스토이가 발췌한 잠언록을 읽고 있는데 문득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글귀가 나오더니 에머슨(Emerson, 1803~1882)의 저서로부터 인용되었다고 되어 있었다.
그 낯익은 글귀는 다름아니라 "잠 못드는 자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자에게 길은 멀다.."라는 법구경의 한 귀절이었는데 나 역시 어느 잠 안오는 밤 불매야장 피권도장 어쩌구 하는 글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암튼..
톨스토이는 그의 책에서 에머슨의 저서에서 발체했다고 밝히고는 있는데 에머슨이 법구경을 인용한 것을 빼먹었던가 아니면 출전의 출전이므로 최후 출전만 밝혔거나 하는 속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누가 누구를 인용했건 전하는 바는 전해졌으니 따질 바는 아니지만 조금 우습기도 하다.
왜냐하면 법구경은 아마도 고대 인도어(검색해보니 '팔리어'라고 되어 있다)로 씌여진 짧은 게송인데 이것을 한문으로 번역하고 다시 한글로 번역했기에 내가 읽게 된 것일테고, 에머슨은 미국인이니까 아마도 한자에서 영어로(혹은 인도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텍스트를 통하여 같은 글귀를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에머슨을 인용했으니 영어 텍스트로부터 이 글귀를 접하고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그의 잠언록에 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잠언록이 다시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출판되었고 이 잠 안오는 밤 내가 또 읽으니 대체 몇 나라의 언어들을 넘나든 것일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구경의 그 귀절 마지막은 '참된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생사의 밤은 길고도 멀다'인데 톨스토이 잠언록에선 이렇게 변모하고 말았다. '무지한 자에게는 인생이 지루하다'.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 참으면서 그러나 나름대로 되새김질 하면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해서 따지지 않기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