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생활의 재발견

[그리운이] 우울한 비상의 꿈

세렌디피티 2004. 8. 23. 17:44
그리운이 Wrote :

옛꿈을 다시 꾸며

                      이 태 수
--아우에게

자라봉이 걸어온다.
발목이 조금 삐인 채 다가서는
산자락의 당나뭇가지에는
우리가 걸어둔 눈물과 몇 개의 낱말들이 눈을 뜨고
그때 날려보낸 모습 그대로의
멧새 한 마리 파닥이며
옛집의 처마밑을 선회하고 있다.
눈을 들어라. 우리는 이제
턱수염이 거칠어지고
꿈도 몇 번씩이나 뒤집어 꾸게 되었지만
그때는 옛날, 옛날엔 꿈이 컸다고 투덜대는
그런 나이가 돼 버렸지만, 고향도 등졌지만
눈을 들어라.
시멘트 벽에 기대어 서서 자주 자주
한숨 쉬고, 눈물을 훔치고
이제 우리는 더 커진 눈으로 떠돌며
아파해야 하는 철도 들었지만
꿈은 아직도 왜 고향 하늘만 맴돌고 있는지.
하늘 보기가 왜 이리도 어려워만 지는지.
그러나 눈을 들어라. 오늘 나는
옛집의 낯선 불빛 앞에 서서
자라봉을 끌어안고 있으니,
우리가 걸어두었던 눈물빛과 몇 개의
낱말들을 부여안고
하늘 저켠, 흘러가는 구름에 떠 흐르는
희미한 꿈조각을 더듬고 있으니,
눈을 들어라.
언제나 우리는 헛돌고 있을지라도
헛돌지 않을 날을 꿈꾸며
밤을 건너면서, 옛꿈을 다시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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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문지에서 나오는 시집을 사면서 구판을 사면 500원이나 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쇄가 거듭할 수록 가격은 조금씩 올라 1500원이면 사던 것을 종내에는 3000원이나 주고 사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이런.. 그때부터 장사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서점만을 기웃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향토장학금에 거의 대부분의 생활을 의지하고 간간히 용돈벌이하는 것은 술로 탕진하던 그때
그러한 절약은 큰 도움이었고 내 갈증을 해소하는 좋은 방편이었다.
더구나 서점을 찾아다니기 위해 하루 한두시간 걷는 것은 다반사였으니 오호라 이것이야 말로
웰빙 캠퍼스 라이프가 아니었던가!
각설하고, 이리 저리 찾아 사서 모아둔 책이 제법되었으니 아마도 그때가 지나고 나서 부터
책을 읽는 분야를 바꿨던것 같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그이후로 이사를 서너번 다니는 사이 일부는 친구의 집에, 일부는 시골집에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그나마 손때묻은 몇권과 영어책만이 책꽂이에 듬성듬성 쌓여있다.
사랑하는 일도 살아가는 일도 집착을 버리는 일부터 시작한다지만
오호라 통재라!
잊혀진 낱말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 없도다!!
그저
문득 생각난 시집이 있었으니 지은이의 이름도 가물한 "우울한 비상의 꿈"이란 시집이였다.
음산하고 습한 그 시집의 기운은 그시절의 나를 이끌었었고
이제 어둠의 자식에서 빛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난 지금도 얼굴없는 유령의 몸짓처럼
나를 끌어들이곤 한다.
음.. 그냥.. 생각해 본다.
지난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를.
어느것이 행복한것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다.
고통과 알코올로 가득했던 그시절을 지나고 나서야
각성도 깨달음도 없는 지금의 잔잔한 시절을 맛보게 된것이리라.
그저. 걸어갈 뿐이다.
그나 저나 배고파서 힘이 없다.